소리소문 없다, 그런데 엄청 센 감독 장외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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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 청바지, 캐주얼한 구두…. 어느덧 50대 중반이지만 장외룡 감독의 감각은 20대 못지않다.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국가대표 감독 등 이루고 싶은 꿈도 많다. [김민규 기자]

사미 히피아(40·레버쿠젠), 폴 램버트(44·애스턴 빌라), 파코 헤메즈(43·라요 바예카노), 클로드 퓌엘(52·니스), 그리고 장외룡(54·칭다오 중넝). 미국의 스포츠 전문 웹진 ‘블리처리포트’가 지난 4일 선정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는 세계 축구 지도자 5인’이다. 히피아 감독은 2012~2013시즌 사령탑에 올라 독일 분데스리가 3위를 차지했다. 램버트 감독은 크리스티안 벤테케(23) 등 유망주를 성장시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헤메즈 감독은 높은 점유율과 압박 축구로 강등 후보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8위로 이끌었다. 퓌엘 감독은 긴축 재정 속에서 프랑스 중하위권 팀을 4위에 올려 놓았다.

 소리 없이 성과를 내고 있는 유럽 빅리그 지도자들 사이에 당당히 한국인이 이름을 올렸다. 중국 수퍼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장외룡 감독이다. 장 감독이 이끄는 칭다오는 올 시즌 16개팀 중 6위(5승8무4패)다. FA컵 8강에도 올라 있다. 칭다오는 신흥 부호들의 ‘묻지마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중국 수퍼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으로 통한다.

 장 감독은 2011년 칭다오와 인연을 맺었다. 약체 팀을 맡아 6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자 2012년 다롄 아얼빈이 모셔갔다. 그러나 리그 초반 성적이 나빴고 부인 병간호도 해야 할 상황이라 미련 없이 물러났다. 칭다오는 지난해 5월 장 감독에게 사령탑 복귀를 제안했다. 칭다오로 돌아온 장 감독은 꼴찌였던 팀을 1부리그에 잔류시켰다.

 중국 수퍼리그 휴식기를 맞아 잠깐 귀국한 장 감독을 16일 만났다. 장 감독은 “칭다오 반도신문이 블리처리포트 기사를 받아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난 세계적 명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는 못 된다”고 겸손해했다. 그러면서도 “칭다오 모기업인 중넝은 중소 회사다. 재정은 중국 팀 가운데 하위권이다. 칭다오 1년 예산이 부자 구단 광저우 헝다의 외국인 선수 연봉 3명을 합친 것보다 적다. 이번 보도가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지도자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수석코치로 장 감독을 보좌한 김봉길(47) 현 인천 감독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선수가 아닌 인간으로 대하며 팀을 만드는 과정을 배웠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2005년 ‘섬기는 리더십’으로 특출한 스타가 없던 인천을 전후기 통합 1위에 올려놓으며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정수(33·알사드)와 김치우·최효진(이상 30·서울)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장 감독은 “지난 시즌 꼴찌로 처져 있던 칭다오에 돌아오니 선수들이 패배 의식에 젖어 있었다. 아버지처럼 아이들을 다독여줬다. 훈련 시작 전 아이들 전원을 한 명씩 안아줬다”며 “자연스레 선수와 신뢰가 쌓였다. 광저우 헝다 등 강팀을 꺾고 극적으로 잔류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인터뷰 내내 선수들을 ‘아이들’이라 불렀다. 칭다오 선수들은 자신들의 아버지 생일을 챙기듯 장 감독 생일파티를 열어준다.

 장 감독은 도전 정신이 남다르다. 1999년 대우 감독대행을 맡다가 일본으로 지도자 교육을 떠났고, 2007년 인천 구단 허락 하에 1년간 영국 유학을 다녀왔다. 장 감독은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이 롤 모델이다. 영국 유학 시절 벵거 감독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다. 유소년 육성 정책과 패싱 축구 등 벵거 감독에게 배울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2010년 일본 프로축구 오미야 시절 모자에 ‘2012 LONDON’과 ‘2014 BRAZIL’이란 글자를 새겼다. 2012년 런던올림픽과 2014년 브라질월드컵 대표팀 감독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드러낸 것이었다. 하지만 장 감독은 “많이 내려 놓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어떤 나라든 대표팀을 맡아보고 싶다”며 “일단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해 칭다오를 이끌고 한국과 일본에 가고 싶다. 장외룡이 이렇게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잊혀지면 안 되잖아”라며 환하게 웃었다.

글=박린 기자
사진=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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