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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800개 학교 급식 식재료센터 자문위원회와 '밥그릇 싸움'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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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감사 결과 보고서. 기획자문위원회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이병호 사장)가 자체 감사를 벌인 뒤 지난 5월 산하 친환경유통센터 내 학교급식 기획자문위원회를 폐지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자문위원회가 자문 역할을 넘어 업체 선정에 개입하는 등 월권을 행사한 것으로 감사 결과 드러났다는 이유다. 그러나 자문위원회가 “표적 감사”라고 반발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14일 본지가 입수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지난 3월 자체 감사를 벌여 ‘학교급식 기획자문위원회 운영 부적정’이라는 조치 요구서를 친환경유통센터에 통보했다. 이에 친환경유통센터는 지난 5월 감사 결과를 근거로 학교급식 자문위원회 운영을 종료시켰다. 자문위원회가 출범한 지 1년 2개월 만이다. 자문위원회는 전 영농조합법인 새벽마을 대표 이병호씨가 농수산식품공사 사장에 취임한 직후인 지난해 3월 설립됐다.

 설립 초기 친환경유통센터와 자문위원회는 상부상조하는 구도였다. 서울시 초·중·고교 800여 곳(서울시내 학교의 60%)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친환경유통센터는 사실상 무상급식 정책의 실행기구 격이다. 지난해 매출이 1316억원이나 됐다.

 또 급식전문가·생산자단체 등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자문위원회는 학교급식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게 목적이었다. 위원장으론 학교급식네트워크 배옥병(56·여) 상임대표가 선출됐고 총 10명의 위원이 활동했다. 위원회에는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을 이끌어 냈던 시민단체 출신 인사가 대거 포진했다. 배 전 위원장을 비롯해 한살림생산자연합회 소속 서정호씨와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최동근 사무총장,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총장을 지낸 박종서씨가 대표적이다.

자문위원회는 올해 2월까지 15차례나 회의를 열며 열성적으로 활동했으나 2개월 전 결국 문을 닫았다.

 위원회 활동 중단의 표면적 이유는 농수산식품공사의 감사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실제로 농수산식품공사 감사실은 조치 요구서에서 “기획자문위원회가 실질적인 정책을 결정하고 의결 및 통제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문위원회가 본연의 역할을 넘어섰다고 판단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센터의 요구로 회의를 개최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자문위원회의 요구로 회의 개최 ▶실행 여부 점검 등 권한범위를 벗어난 파행 운영 ▶학교 급식과 관련된 공급·배송 협력업체 선정 과정에서 일부 자문위원의 부적절한 행위로 인한 공정성 저해 등을 지적했다.

 하지만 유통센터 내부의 반발도 원인이 됐다고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유통센터 직원들이 자문위원회 운영을 놓고 농수산식품공사에 감사를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내부 주도권 다툼이 있었다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후 시정 일선에 나선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과 공무원들 간의 갈등이 표출됐다는 얘기다.

 유통센터 관계자는 “유통센터와 자문위원들 사이에서 업체 선정 기준을 놓고 갈등이 있었다”며 “자문위원회의 일부 위원이 센터 측에 학교급식 식자재 공급업체의 기준을 낮출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권에 개입했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배옥병 전 기획자문위원장은 14일 “자문위에서 월권을 행사한 적이 없고 감사 결과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자문 역할에만 충실했을 뿐이고 업체 선정 등에 개입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문위원은 “농수산식품공사 감사실이나 친환경유통센터에서 자문위원회 관련 어떤 통보도 받은 적이 없다”며 "감사실 지적에 대해 직접 확인하기 전엔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의회 최명복 교육의원과 시의원 일부가 서울시에 종합 감사를 요구하고 있어 사태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강기헌·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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