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무릎 아래 감각 없는데 … 보상 길 영원히 막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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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 소송이 대법원에서 원고 패소로 결론 난 12일 이수만(64·사진) 고엽제미국소송추진위원회 회장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 회장은 “14년 동안 힘겹게 싸웠는데 이제 미국 법정에서 고엽제 제조사를 상대로 피해 회복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은 영원히 가로막혔다”고 아쉬워했다. 이 회장 역시 고엽제 피해자다. 그는 1994년 국내 베트남전 참전 군인 중 처음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 고엽제 피해보상 청구 소송을 냈다. 미국 재판이 질질 늘어지자 99년 서울중앙지법에 같은 취지의 소송을 냈다. 한국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 미국 법원에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 베트남전 당시 고엽제에 대한 기억은.

 “69년 12월 베트남에 파병됐다. 2년6개월 동안 백마부대 통역병으로 일했다. 현지는 정글이 우거져 모기가 참 많았다. 미군 비행기·헬리콥터가 수시로 머리 위로 날아다니며 하얀 가루를 뿌려댔다. 모기약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모기약 치곤 좀 독하다고 생각했다. 고엽제를 뿌린 지 2~3일 지나면 나뭇잎이 벌겋게 변해 떨어졌고, 보름쯤 지나면 나무가 말라 죽었으니까.”

 - 어떤 후유증을 앓고 있나.

 “말초신경병과 당뇨를 앓고 있다. 특히 말초신경병이 심해 팔꿈치 아래부터 손가락, 무릎 아래부터 발가락까지는 거의 감각이 없다. 고엽제 후유증 4급 판정을 받았다.”

 - 고엽제 후유증이란 걸 어떻게 알았나.

 “파병 갔다 귀국하고 몇 년 뒤부터 참전 동료들 일부가 시름시름 앓다 쓰러졌다. 그땐 풍토병인 줄 알았다. 심지어 ‘월남 매독’이라는 오해 때문에 쉬쉬하기도 했다. 91년 한 언론에서 ‘미국·호주·뉴질랜드의 베트남전 참전 고엽제 피해자들이 고엽제 제조사로부터 피해보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그때 고엽제 때문에 얻은 후유증이란 걸 알았다.”

 - 대법원에선 염소성 여드름 피해자 39명에 대한 손해배상만 인정했는데.

 “ 대법원 확정 판결 때문에 고엽제 피해 후유증을 근거로 국가로부터 받고 있는 보상금이 끊기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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