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의 새실력자『카투체프』|「루마니아」공당대회 소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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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닉슨」의 요란한 행차가 지나간「루마니아」에서는 6일부터 이 나라의 제10차공산당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이 대회에 참석한 소련대표단을 인솔하고 있는 것이「브레즈네프」나「코시긴」같은 거물이 아니고 중앙위서기에 불과한「콘스탄틴·카투제프」라는 사실이 화제가 되고 있다.
닉슨 방문에 불만「닉슨」방문에 대한 불쾌감의 표시로「크렘린」이 일부러 2급대표단을 보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유럽」의 신중한 관측자들은「카투체프」가「크렘린」서는 무시못할 존재임을 지적하면서「체코」사태때 모후에서 맹활약을 한 이사나이의 정체를 밝히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중이다.
우선 지적되는 것은「체코」의 운명을 가름한「치에르나·나도·티수」회담때「카투체프」가 앉은 좌석은「브레즈네프」「코시긴」「수슬로프」「셸레스트」다음이었다는 사실이다.

<수석으로 고교졸업>
이무렵부터「카투체프」는「코시긴」이 물러날 경우 다음 수상이 될것이라는 풍문이 그치지 않는다. 밤을 새워 이 회담의「코뮤니케」를 작성한 사람도「카투체프」였다.
수재인「카투체프」는 2차대전때 17세로 입대했고 46년엔 수석으로 고교를 졸업했으며 21세때에 「몰로도프」「미코얀」「불가닌」의 모교인「고리키」대학공과를 나왔다. 그의 졸업논문심사위원중의 한 사람인「요시프·코틴」은 유명한 T34「탱크」제작자였다.「카투체프」는「코틴」에 발탁되어「크렘린」에 까지 소개된 것이다.「크렘린」에 소개될 때까지도 그는 당에 적을 두지 않았다.

<건설행정 한손에>
「고리키」자동차공장의 수석기사가 된 그는 65년 그곳을 방문한「브레즈네프」의 마음을 끌어 일노 출세가도를 달린 끝에 68년 일약 당서기국장의 지위까지 올랐다.
현재 그는「건설 및 기초산업위원회」의 최강회원으로 그의 승인없인 어떤 공장도 건설하지 못하고 어떤 무역협정도 체결하지 못한다.「체코」사태가 터지자「브레즈네프」는 그에게 이 문제를 전담시켰다.
68년 12월「코시긴」파인「쿠즈네조프」외무차관이「체코」점령지역시찰보고를 냈을 때「브레즈네프」는 이 보그서를 각하하고「카투체프」로 하여금「쿠즈네조프」등 6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다시 시찰보고를 내게 했다. 이 사실로 미루어보아「브레즈네프」가「카투체프」를 자신의 심복으로 얼마나 신임하고 있는가를 알수 있다.

<과소평가는 금물>
「카투체프」는 올해 41세로 소련지도층의 평균연령보다 17세나 젊다는 강점까지 갖추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그가「루마니아」에 간 것을 과소평가만 할 수는 없고「브레즈네프」가 필요로 하는 현지정세판단이라는 중요한 사명을 띠고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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