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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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근간 「선디. 타임즈」에 실린 미국의 우주개발에 관한 내막담은 아주 재미있다. 미국이 우주선을 처음으로 발사한것은 1957년12월6일이었다. 이때는 이미 소련측에서「스무트니크]를 쏘아올린지 두달이나 되는 무렵이었다. 그 현장(캐이프.캐나베랄)엔 [로키트] 지사,신문.방송기자등 수백명이 모여 발사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점화와 동시에 불과 10Cm도 못올라가 그것은 재가 되고 말았다. 신문들은 물론「스테이프니크](앉은방이 로키트), [폴로프니크](털썩발이 로키트) 라고들 빈정거렸다.
당시 [아이젠하워]대통령은 그까짓것엔 별로 관심조차 없었다.『공중에 솟은 공 하나… 티끌만한 관심도 없네!』이런 형편이었다. 그때 「폰. 브라운」박사의 나이는 4O세. 그가 오늘날『우주정복의 아버지』 처럼 칭송을 듣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의 頭腦때문이 아니라 바로 뜨거운 심장때문이었다. 마치「빌리. 그램」 이 하나님을찾듯, 그는 [로키트]를 부르짖으며 설득에 나선 것이다.
『달(Moon)을쏘기란, 사슴(Moose)을 쏘는것보다 더 쉽다] 이것이그의 「캐치. 프레이즈] 였다. 그는 과학자이기보다는 웅변가로 나서서 사람들을 흔들어 깨웠다. 또한사람의 과학자가 있다. 미국의 수폭을 개발한「에드워드.텔러]박사. 『우주개발의 위험도는 열전이든 냉전이든 그속의 어떤 위험률보다도 낮다』 고 그는 상원의원들을 설득했다.
「케네디]대통령에 이르러서도[로키트」는 별관심사가 아니었다. 다만 소련쪽에서 그것을 국제무대로 업고 나오는것이 마음에 걸릴뿐이었다. 바로 16일밤10시32분(한국시간) 「아폴로」11호가 드디어 발사되는 현장엔 「존슨」 전대통령부처가 열심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었다.
「아폴로」의 인간추진력은 누구도 아닌 그 「존슨」 대통령이었다. 그는 상원의원때부터 줄곧 우주개발에 관심이 있었다. 그의주장이 그럴듯하다.[(로마」제국은 세계를 다스렸다. 길을 닦아 놓았기때문이다. 인간이 바다에 길을 트고나서는 영국이 세계를 지배했다. 배를한손에쥐고있었기때문이다. 다음엔 무엇이 남겠는가. 』 「존슨」이야 말로 「아폴로」11호의 영광을 나누어 가질만하다. 16일밤 TV에서 「아폴로」 11호를 본 세계의시민은 무려 몇 억일까.
우리는 우주시대에 사는 「지구인의식」 같은것도 생각하게 된다. 이 세기적사건뒤엔 과학자의기술보다도 광신자같은 웅변이 있었던것이 더욱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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