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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정상화, 더 미룰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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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머피의 법칙은 어김이 없다. 그동안 동업자 업계에서 쉬쉬하던 비밀이 드디어 터진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아하, 또 어느 기업이 분식회계해서 정치권에 뇌물 주었다가 걸렸구나.'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주제는 대학원의 경쟁력이다.

대학원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참 조심스러운 일이다. 자기 얼굴에 침을 뱉자니 부끄럽고, 남의 얼굴에 침을 뱉자니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 문제는 더 이상 숨기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졌다. 이 문제는 갈 곳 없는 학위 소지자의 문제나, 학문의 재생산 부재라는 차원을 넘어 향후 국가경쟁력의 실종이라는 차원으로까지 점점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대학에서 대학원의 실상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우선 대학원생의 학력 저하가 심각하다. 서울대를 포함한 거의 모든 대학이 자기 학교 학부생들의 동계 진학을 유도하는 데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다. 부끄럽지만 대학원생의 상당수는 '학문의 후속세대'라기보다는 외환위기 이후 얼어붙은 취업시장을 두드릴 시간을 벌기 위한 '산업예비군'일 뿐이다. 그리고 대학원은 이들을 걸러내기보다는 등록금 수입이나 교수들의 연구보조인력 수요 충족을 위해 이들을 모두 수용하고 있다. '줄만 서면 들어가는 대학원'의 실상이 이러하다 보니 기업들은 당연히 대학원의 최종 산출물을 외면하게 되고 여기서 '불신의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물론 섣부른 단순화는 위험하다. 어느 대학이나 학문에 뜻을 둔 우수한 대학원생이 있고, 또 열악한 여건에서도 이들을 성심성의껏 지도하는 교수가 있다. 학교나 연구직을 찾는 학위 소지자들 중에는 동기와 역량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특정 학문분야의 경우에는 과열을 우려할 정도로 대학원생의 지원이 넘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더 이상 '원칙'이 아니라 '예외'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목표는 자명하다. 대학원이 우수한 석.박사를 배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먼저 동기와 학문적 역량 면에서 우수한 인재를, 그리고 우수한 인재만을 대학원에 유치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외국 유수의 대학원 교육에 걸맞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카펫 깔린 조용한 강의실과 그들만의 연구공간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기혼자 기숙사도 지어 주고 장학금도 충분하게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한눈팔지 않고 공부만 하는 '전업대학원생'이 출현할 수 있다.

이런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국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물론 지금도 대학원에 대한 각종 지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국가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대학원 지원을 전폭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심할 부분이 있다. 경제학에 따르면 정부가 어설프게 보조금을 지급할 경우 해당 공급자는 공급량을 비효율적인 수준으로까지 확대할 유인을 가진다. 대학원 교육에서도 대학원생을 '현금수입의 증가변수' 정도로만 생각하는 일부 학교에서는 국고보조를 따먹기 위해 열악한 교육환경은 방치한 채 대학원 정원만 계속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런 사이비 대학원과 고등교육에 진정으로 뜻을 둔 대학원을 구별해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대학원생들만을 위한 교육투자는 과감하게 집행하면서도 대학원 정원은 자율적으로 축소시켜 우수한 인재만을 대학원생으로 선발하는 대학원을 중점지원대상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 이럴 때에만 비로소 대학원의 최종 산출물은 불신의 악순환이라는 고리를 끊고 창조의 선순환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