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창조성 부족 … 기업가 정신 가진 젊은이에게 권한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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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만난 리치 레서 BCG 대표는 “한국 경제와 기업의 미래를 밝게 전망한다”며 “비관하지 말고 스스로를 믿으라”고 조언했다. [김상선 기자]

올 상반기 코스피는 -6.7%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정부의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7%로, 3%에 훨씬 못 미친다.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중국 상하이A지수는 상반기 13% 떨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이 올 한 해 8% 성장할 거라고 전망했다가 그 수치를 7.75%로 낮췄다. 골드먼 삭스는 “앞으로 7년간 6%를 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내놓았다. 그런데도 “아시아는 여전히 배고프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현대 기업인이 갖춰야 할 첫째 덕목으로 ‘아시아에 대한 이해’를 꼽을 정도다. 세계 3대 컨설팅업체 중 하나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최고경영자(CEO) 리치 레서(50) 얘기다.

 그는 “아시아 시장을 불안하게 보는 이가 적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도 “성장하고자 한다면 아시아에 집중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 국민들이 중산층으로 올라서면서 10조 달러(1경원) 규모의 소비시장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레서 대표는 “수출로 성장한 한국 기업은 글로벌 감각이 뛰어난데 아시아 시장에 대해선 부족한 점이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이 아시아 시장에 덜 집중한단 말인가.

 “글로벌 기업이 아시아 시장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부터 보자. 프랑스의 정보기술(IT) 기업인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본사를 자국과 홍콩 두 곳에 운영한다. 나 역시 미국과 중국에서 반씩 근무한다. 이뿐 아니다. 최고 경영진을 임명할 때 국적을 안배하는 것도 일반화돼 있다. 한국 기업은 아직 이런 수준에 이르지는 못한 것 같다.”

 -‘아시아에 주목하라’는 조언이 새롭진 않다.

 “아시아가 소비시장이 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중국과 인도에서만 10억 명의 중산층 소비자가 생겨날 것이다. 장기적으로 이들 국가의 연 평균 경제성장률을 8% 수준으로 전망한다. 양국 모두 변동성과 투자 위험성이 크지만 이는 성장통이다.”(※BCG는 지난해 말 『10조 달러 시장: 중국과 인도의 새로운 부유층을 사로잡는 법(10 Trillion Prize: Captivating the Newly Affluent in China and India)』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놓았다.)

 지난 1월 CEO에 취임한 그는 이번에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한국 기업에 대한 인상을 듣고 싶다.

 “한국 기업은 후발주자로 출발해 글로벌 기업이 됐다. 정확한 목표를 세우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실행력이 원동력이다. 특히 나는 삼성전자를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과 함께 성공한 리더십 모델로 꼽는다. 삼성은 빠르게 변하는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도 장기적인 경영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단점은 없나.

 “창조성이 부족하다. 한국 기업은 각 분야의 1등 기업을 롤 모델로, 그 기업보다 빨리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전략으로 승부해왔다. 하지만 이제 중국 기업이 그 전략을 구사하며 따라오고 있다. 조직 내 창조성을 활용해 혁신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기업가 정신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권한을 줘야 한다. 연공서열을 중요시하는 문화 때문에 창조성이 억눌려 있다. 또 내부 인력만 활용하는 문화를 버려라. 한국의 중소기업 및 새롭게 진출한 해당 국가 현지 기업 인력과 협업해야 한다. 이게 바로 실리콘밸리가 일하는 방식이다.”

 -후발주자에서 선도 기업이 된 사례가 있다면.

 “멕시코 시멘트업체 시멕스(CEMEX)와 인도의 바자즈(Bajaj) 오토를 소개하고 싶다. 시멕스는 멕시코가 외환위기를 겪던 당시 유통 등 비핵심 사업을 정리해 세계 3위 시멘트업체가 됐다. 바자즈 오토는 ‘중국의 앞마당’이라 불리는 아프리카에 중국보다 늦게 진출했음에도 시장점유율 1위다. 꼼꼼하게 따지는 아프리카 소비자의 특성을 맞춰 시승 서비스를 실시하며 현지화에 성공했다.”

 -뉴욕사무소장으로 일할 때 여성 컨설턴트 비율을 35%로 높였다고 들었다.

 “능력 있는 직원에게 고르게 기회를 제공하는 건 리더의 책임이다. 여성도 예외일 수 없다. 특혜를 준 건 없다. 남성과 동일한 수준에서 기회를 갖도록 했을 뿐이다. 여성 멘토링 제도를 만들고 매년 여성 컨설턴트가 주최하는 콘퍼런스를 열어줬는데, 그런 게 예다. 또 유연 근무를 하거나 보직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해 일과 가정의 양립을 도왔다.”

 -취임 후 첫 방한이다.

 “비관적인 분위기에 놀랐다. 한국은 모든 신흥국이 롤 모델로 삼을 만큼 성공적으로 성장해왔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인재인데, 한국은 높은 교육열과 특유의 근면함을 기반으로 한 인재 풀도 넓다.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지만 나는 한국의 미래를 낙관한다.”

글=정선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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