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 샤이보 죽음으로 불 붙는 안락사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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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선

식물인간 테리 샤이보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숨을 거둔 것과 관련, 미국 의회가 새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백악관이 같은 날 밝혔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의회가 검토 중인 법안이 넘어오면 바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임스 센센브레너(공화.위스콘신) 미 하원 법사위원장은 "샤이보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서명했던 특별법이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새 법안의 주요 내용은 식물인간의 생명 연장 여부에 관한 법적 판단을 연방법원이 하는 것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한편 미국 가톨릭교회는 샤이보의 죽음을 계기로 안락사와 낙태 반대를 전담하는 수도회를 창설키로 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보도했다.

15년간 식물인간으로 지내온 샤이보는 41세로 숨졌다. 지난달 18일 법원의 판결로 영양공급관이 제거된 지 13일 만이다. 로마 교황청은 "영양공급관 제거는 생명에 대한 공격이자 생명의 창조자인 하느님에 대한 공격"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존 댄포스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달 30일 미국 공화당이 종교의 볼모가 되고 있다며 비판했다. 안락사 문제를 품위있게 죽을 권리 차원이 아니라 종교적으로 접근했다고 꼬집은 것이다.

과체중이었던 샤이보는 1990년 무리한 다이어트 후유증으로 심장 박동이 잠시 멎었고 그로 인해 뇌가 치명적 손상을 입으면서 식물인간이 됐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 한국선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은 불치병 환자가 죽을 권리를 요구할 경우 의료진이 치료를 중단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 국민의 상당수가 이른바 '소극적 안락사'에 찬성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림대 법학부 이인영 교수는 2003년 4~6월 전국 16개 시.도 지역에서 전체 인구 비율에 따라 성.연령별로 표본 추출한 1020명에게 '고통이 극심한 불치병 환자가 죽을 권리를 요구할 때 의료진은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가'를 물은 결과 69.3%가 이에 동의했다고 1일 밝혔다. 반면 치료 중단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7.5%에 그쳤다. 소극적 안락사란 생명유지 장치를 착용하고 있는 환자가 이를 떼어내면서 사망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반면 적극적 안락사는 약물 등을 투여해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2일 '밝은 죽음을 준비하는 포럼'과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등이 공동 개최하는 '소극적 안락사 논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이는 안락사에 관해 가장 최근에 실시한 우리 국민의 의식조사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환자가 의식불명이 될 경우를 대비해 (환자 스스로) 사전에 치료 거부 또는 치료 중단의 의사표시를 했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70.8%)이 반대 의견(25.3%)을 크게 앞질렀다. 응답자들은 또 의사가 환자의 호소를 받아들여 약물이나 의료 기구를 이용해 환자를 죽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도 56.2%가 찬성했다.

이 교수는 "적극적 안락사는 많은 부작용이 예상되기 때문에 허용해선 안 되지만 회복 가능성이 없는 불치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환자의 의사결정에 따라 그가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생명연장 조치를 제거하거나 중단, 보류하는 '존엄사'는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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