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동란 19돌 『복양』을 씻고 국국은 막강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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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으로 향한 길은 잡초에 덮여 있었다.
『여기는 38선. 북진하자.』
팻말의 구호를 넘겨보며 38경계를이루었던 한탄강을 건너 수복지구를 달리면 경원선종착역인 신탄리.
북으로 치달리던 철길은 조국의 상처입은 몸둥이처럼 두동강이 난채 폐허속에 그잔해를 처절히 드러내 놓고있다.
1950년 6월25일 미명.
242모의 소제전차를 앞장세운 북한괴뢰군은 (보병8개사단 20만) 불법남침을 개시, 일순에 대한민국을 동난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19년이 흐른 오늘.
잡초와 폐허위에는 북한괴뢰의 만행을 지키는 국군의 눈초리가 어느때보다 날카롭게 빛나고있다. 6·25의 쓰라린체험, 1·21의 무장공비침투사건, 그리고 그이후 울진·삼척등의 계속되는 무장간첩의 남파. 초년대 무력통일이라는 김일성의 망상적 야욕을 깡그리 부숴버리기위해 휴전선을지키는 국군은 오늘도 북녘하늘에 두눈을 똑바로 못박고있다.
월남파병 4년의 햇수를 넘긴 국군은 월남 「정글」에서 대 「게릴라」전의 실전을통해 늠름히 자라났다.
공산군에 짓밟힌 우방 월남공화국을 도와 6·25때의 자유우방군에 대한 고마왔던 보답을 하는 한편 국군은 스스로 전투력향상을 꾀했다.
월남전을 통한 한국군의 전투력향상은 놀라운 것. 더구나 「게릴라」 전에대한 전술은 눈부시게 향상되었다.

<명중율은 포병만 하더라도 백%까지>
월남전에서 수십만발의 포탄을 적진에 쏘아 그 명중율을 100%라고 자랑했다. 실전을 통한 적진 표적 관측을 비롯, 영거리사격, 포신360도 회전을 위한 회전축 장치등은 한국포병이 월남전에서 처음으로 시도하여 그 정확성과 위력을 과시했던 고도의 기술들.
이 실제로 닦은 기술로 휴전선을지키는 포병의 용자는 금시라도 평양을 명중시킬 자신에 넘쳐있다.

<북괴침투 저지만전>
6·25 그날 연천∼서울가도는 북괴주력부대가 머친듯 밀어닥치던 곳. 개성·고량포방면으로 내려오던 조공부대와 합로하여 28일 서울이 적의 손에 넘어갔었다.
그러나 이제 이 중요한 군사요로를 지키고 있는 ○○○○부대는 『금년안에 전투준비 완료하자』 는 「슬로건」아래 대침투작전에 대한 방위태세를 이미 끝마쳤다.
○○○○부대 포병부대장은 우리군의 전투력이『6·25당시와는 하늘과 땅의 차이』 라고 말하면서 『175항 형사포로는 평양에 포탄세례를 퍼부울 수 있다』 고 장담했다.
휴전선을 지키는 ○○○○부대 수색중대 이모 (25) 병장은 백마사단 28연대 2대대 5중대에 1년2개월동안 파월했던 용사. 그는 『월남전에서 실제 경험한 전투경험을 살려 멋있게 매복둥 수색작전을 펴고있다』고 시커먼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싱긋 웃었다.
월남전에서 닦은 전투경험은 곧 병사의 자신과 용기의 밑거름이 되고 있었다. 155마일 휴전선에 철책이 완전히 둘러쳐진 이후 북괴의 육상침투는 거의 불가능하게 되고말았다.
정모 (24)하사는 『2년동안을 휴전선 수색중대에 있는동안 북괴군과 총격전도 많이 벌였었는데 철책완성 이후감히 넘겨다보지 못하는지 요즈음은 맞붙는 일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서울 정북방, 예전 강원도 철원군에 속했던 삼입이북 5개리는 수복후 1963년 1월1일 경기도 연천군에 견인, 서부전선의 군사요지가 되고있다. 경원선의 종착역 신탄리부락은 민통선 너머에 있는 경기도 최북단의 마을.
대광리까지는 자유로이 출입이 되지만 신탄리지역의 주민 4천여명은 특별증명을 가지고 잃었던 땅과 집을찾아 농사를 짓고있다.

<귀농민도 방위솔선>
이곳 주민들의 일상 구호는 『간첩을 잡자』는 것. 옆동네 낯선 사람이 길을 잘못 들어도 간첩으로 오해받아 신고를 하게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신탄리에서 담뱃가게를 벌이고있는 이명복 (54) 노인은 『담배를 팔면서 낯선 사람이 지나가지 않나 길을 지키는 일이 또 하나의 일과』라고 서슴치않고 말했다.
19년전, 6·25 그날의 쓰라림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항상 허점을 노리는 붉은간첩을 재빨리 찾아 잡기 위해, 모두다 다시 한번 마음가짐을 굳게 해야할것 같다.
글 양태조기자 사진 김정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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