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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 怪박스 96개 극비 운반"

중앙일보

입력

"박스속에 든 물건 달러뭉치로 확신"

화물운송업체인 현대택배가 2000년 4~6월 현대상선에서 보내는 '의문의 괴박스' 96개를 극비리에 운송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시기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6월 12~15일)이 이뤄지기 직전이며, 현대상선이 마카오 등을 통해 북한에 돈을 보낸 때(2000년 6월)와도 맞물려 있다.

이에 따라 이들 박스에는 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에 보낸 물자가 들어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택배는 현대상선에서 출자한 자회사로, 현대상선이 금강산관광사업 등 대북사업을 주도한 1998년 이후에는 북한으로 보내는 물건을 도맡아 운반했다.

◇'의문의 박스'이동=현대택배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C씨(34)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현대택배가 2000년 4월부터 6월까지 세차례에 걸쳐 박스 96개를 현대상선 고위층의 요청으로 운반한 사실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나도 직접 박스 38개를 택배 차에 싣고 서울 무교동 현대상선 본사에서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뒤편 이면도로까지 극비리에 전달하는 작업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두차례 작업은 현대택배 동료 직원이 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특히 운반작업의 총책임자로 현대상선 이석희(당시 전무.현재 비상임 자문역)전 부사장을 지목했다. 李전부사장이 운전석 옆에 함께 타고 가 물건 운송 과정을 직접 감시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C씨는 무교동 현대상선 본사에서 갤러리아백화점까지 박스를 운반했었고 李전부사장은 그곳에서 내린 뒤 6인승 밴에 옮겨싣고 어디론가로 떠났다는 것. 그는 이 박스가 북한에 건네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C씨는 특히 "당시 괴박스는 라면박스보다 더 큰 상자로 현대상선 내부에서만 쓰는 특수 테이프로 완전히 밀봉했다. 물방울조차 들어갈 수 없이 완벽하게 포장돼 있었다"고 덧붙였다.

◇'내용물은 달러 뭉치?'=C씨는 "현대택배에서 근무할 때 극비리에 물건을 나르는 작업에 자주 관여했기 때문에 당시 이 박스가 현찰이며 정황상 달러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라면 박스보다 큰 상자 한개에는 1만원권으로 3억~4억원 가량이 들어가는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원화를 1백개 박스에 넣으면 약 3백억~4백억원까지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대신 1백달러짜리로 넣는다면 엄청난 금액이 들어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따라서 C씨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현대상선은 해외 금융기관을 통한 대북 송금 이외에 많은 돈을 북한측에 현찰로 보냈을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특히 달러보다 단위가 더 큰 영국의 파운드화 등을 넣었거나 이를 섞어 넣었다면 금액은 더 커진다는 게 금융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편 한나라당 이성헌(李性憲)의원도 지난 11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이끄는 세차례의 소떼 방북단이 갈 때마다 현대가 차 안에 엄청난 양의 달러를 싣고 갔다"며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북한은 그간 남북한 교류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그 대가로 남측에 달러를 현찰로 직접 가져올 것을 요구해 왔다.

◇李전부사장은 누구인가=그는 당시 해외영업 총괄 담당인 컨테이너선 영업본부장이었다. 그는 95~2000년까지 5년간 영국 런던의 유럽본부장을 지냈다.

현대그룹 내에서는 정몽헌 회장.김재수 경영기획팀 사장과 함께 연세대를 나와 鄭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던 인물로 알려졌다. 더구나 鄭회장과 金사장은 북한에 정상회담 대가로 돈을 보내준 핵심 인물로 지목받고 있다.

◇남는 의문점=C씨는 이 박스 속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만약 돈이었다면 현대상선이 한꺼번에 그만큼을 북한에 보낼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더구나 운반 총책으로 지목된 李전부사장은 이 일에 개입한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어 의혹은 커지고 있다.
김시래.이상일.이정재.고정애.박신홍 sr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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