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국내 첫 전용망 구축한 '인터넷의 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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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실 그때만 해도 일반인들이 인터넷을 쓰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1982년 5월 15일. 경북 구미 한국전자기술연구소(현 전자통신연구소)의 책임연구원이었던 전길남(62.현 KAIST 교수)씨는 전화선을 통해 연구소의 컴퓨터와 서울대 컴퓨터를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해외 과학자 유치 정책에 호응해 미국에서 귀국한 지 3년 만에 이룬 결실이었다. 'SDN'으로 명명된 이 망은 훗날 국내 인터넷의 효시로 기록된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조차 이 망이 어떻게 발전할지 짐작하지 못했다. '인터넷'이란 말조차 생소하던 때였다.

"SDN은 엄밀히 말해 불법이었습니다. 전화선을 음성 전송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려면 따로 허가를 받아야 했거든요. 관련 공무원들조차 '왜 그런걸 하느냐'는 식으로 반응할 게 뻔하고…."

86년 미국은 자국 내에서만 운용되던 인터넷망을 국제적으로 개방했다. KAIST로 옮긴 그는 90년 국내 최초로 인터넷 전용망인 '하나'를 구축해 미국의 인터넷망에 연결시켰다. 일본, 호주에 이어 아시아권에서 3번째였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가 열렸다. 정부가 나서기 전에 '.kr'이란 국가 도메인을 처음 관리했던 것도 그다.

'한국 인터넷의 대부'로 불리는 그가 지난달 30일 조인스닷컴 10주년 기념식에서 제1회 i피플상 '씨앗상'을 받았다. 환갑을 훌쩍 넘긴 지금도 그는 학자와 벤처기업의 대표로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유례없이 인터넷을 빨리 도입했고, 성공적으로 정착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특히 386세대들의 노력과 헌신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그러나 아직 만족할 만한 단계가 아니라는 말도 했다.

"인터넷 강국이라곤 하지만 지금도 막대한 기술 도입료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기술을 도입, 이용하는 개발도상국형에서 벗어나 원천 기술을 가진 선진국형으로 진입할 때입니다."

글=조민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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