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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시 체포 순간 주변엔 경호원조차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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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느 독재자의 최후처럼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은 고독했다. 48시간의 기한이 끝났을 때 무르시 전 대통령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AP통신은 5일 이집트군과 무슬림형제단 관계자 등의 말을 인용해 무르시가 측근에게 버림받다시피 한 상태에서 군에 체포됐다고 전했다. 특공대가 무르시가 있던 공화국수비대 본부에 도착했을 때,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경호원은 아무도 없었다. 경호 임무를 맡았던 수비대원들이 몇 시간 전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무르시는 포기한 듯 별 저항 없이 압송에 응했다. 무르시는 1일(현지시간) 압둘 타파 알시시(59) 국방장관으로부터 48시간 이내 사임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받을 때만 해도 “투표로 적법하게 선출된 내가 어떻게 내려오느냐”며 완강하게 맞섰다. 이집트 일간 알아흐람에 따르면 무르시는 자진 사임을 선택하면 리비아 등으로 안전한 피신을 보장하거나 기소 면제를 해주겠다는 제안도 받았지만 이 역시 거부했다.

 하지만 이는 무르시의 ‘눈치 없는’ 오기일 뿐이었다. 군 병력이 배치되고 있는 동안에도 안보기관은 무르시에게 상황보고를 하지 않았다. 경찰은 무르시가 속한 무슬림형제단 건물 경비를 거부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사법부·군·경찰 등과 불화를 겪었던 그는 사실상 ‘왕따’ 신세였다. 무르시는 최후 방책으로 서방국가 대사관에 도움을 청했지만 이 역시 허사였다. 서방 정부들은 무르시 측근의 전화에 냉담하게 응대했다. 무슬림형제단 관계자는 “6월 23일(알시시 장관이 군 개입을 경고한 날) 사실상 상황이 끝났다”며 “앤 패터슨 카이로 주재 미국대사를 포함해 서방국가 대사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무르시는 막판에 군에도 손을 뻗었다. 보좌관 두 명을 통해 군내에서 조력자를 물색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미 알시시 장관이 알아차리고 대통령궁과 어떤 접촉도 하지 말라는 지시를 군에 내려보냈다. 무르시 측근과 접촉한 사령관이 있는 부대에는 정예군이 파견됐다. 고립무원 상태에서 버티던 무르시는 특공대에 의해 체포·억류된 뒤 지금은 국방부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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