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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섬유산업 개척한 대구 경제계 '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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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12일 83세를 일기로 별세한 헌암(憲岩) 백욱기(白煜基)동국무역 명예회장은 국내 섬유산업을 이끈 1세대 경영인이다.

염색원료 행상으로 출발, 굴지의 섬유기업을 일궜고 국내 섬유산업의 메카인 대구에서 '대부'로 불릴 만큼 지역경제 발전에 헌신했다.

경북 달성에서 태어난 白회장은 16세 때 대구 서문시장에서 포목점을 열면서 섬유업에 발을 들여놨다. 40세 때엔 동국무역의 전신인 아주섬유를 설립하고 섬유생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동국산업과 동국방직을 세워 종합 섬유회사로서 모양새를 갖춘 고인은 정부의 수출 진흥정책에 맞춰 섬유제품 수출에 앞장서 1992년엔 단일 섬유업체로는 처음으로 수출고 5억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량으로 치면 8천만명이 옷 한벌씩을 해 입을 수 있는 양이었다.

고인은 생전에 섬유인들에게 '등소평'으로 불렸다고 한다. 단신이지만 추진력이 강해 지역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팔을 걷어붙였기 때문이다.

80년대 초 직물업체들이 자금난으로 허덕일 때 은행장과 담판한 끝에 2백억원의 지원금을 받아 지역업체들의 숨통을 터준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특히 白회장은 경기가 어려울 때도 하청업체들의 입장을 고려, 결제를 미루지 않아 중소기업인들과도 깊은 신뢰를 쌓았다. 이런 고인은 섬유산업이 사양산업으로 몰릴 때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섬유산업은 영원하다"며 섬유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이외에도 소년.소녀가장과 대학생들을 위해 79년 장학재단을 만들었으며, 동국실업고를 설립해 불우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도 했다. 고인은 84년 국민훈장 석류장, 95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장례식은 오는 16일 오전 9시30분 대구 섬유개발원 국제회의장에서 치러진다. 유족은 부인 류정임(81)씨와 백문현 동국무역 회장 등 4남4녀, 빈소는 대구 경북대병원, 발인은 16일 오전 8시다. 053-420-6145.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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