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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화유산 아리랑 정작 국내에선 문화재 대접 못 받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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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5월에 강원도(14일 춘천, 15일 정선) 찍고 전라남도(23일 진도, 24일 목포) 찍고 다시 경상남도(29일 창원, 30일 밀양)를 찍었다. 이제 서울로 올라올 차례다. 오는 17일 저녁 서울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공연의 대미(大尾)를 맞는다.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하는 ‘전국 아리랑 모둠공연’이다. 3대 아리랑으로 꼽히는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이 주축이다.

 아리랑은 하나가 아니다. 지역 따라 제각각이다. 학계에서는 약 60종, 총 3600여 수가 있다고 추정한다. 게다가 아리랑은 끊임없이 변하고 새로 태어난다. 의병아리랑·사할린아리랑·파리아리랑·LA아리랑이 있는가 하면, 북한 공훈예술가 최성환(1936~1981)의 명곡 ‘아리랑 환상곡’이나 김연아 선수가 얼음판에서 선보인 ‘오마주 투 코리아’ 같은 편곡, 연극·뮤지컬 등으로 이어지고 확산되고 있다. 한민족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니는 셈이다.

 전국 아리랑 공연의 연출자 최윤필(55)씨는 “정선아리랑은 애잔하고 깊은 느낌, 진도아리랑은 합창하기에 딱 좋은 흥겨움, 밀양아리랑은 활달하고 명랑한 맛이 있다”고 평한다. 어느 아리랑이든 흥(興)과 한(恨)이라는 공통의 정서가 담겨 있다. ‘앞 남산 딱다구리는 생구녕도 뚫는데 우리 집에 저 멍텅구리는 뚫버진 구녕도 못 뚫네’(정선아리랑)처럼 은근한 야함과 유머도 묻어 있다.

 지난해 12월 아리랑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데는 중국이 2011년 조선족 아리랑을 국가급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게 자극제 역할을 했다. ‘자칫하면 중국에 뺏길라’하는 위기의식이었다. 그러나 인류 공통의 문화유산으로 공인받은 아리랑이 정작 국내에선 아무런 법적·제도적 뒷받침도 받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정선아리랑이 강원도 무형문화재이긴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현행법상 지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화재보호법(24조)에는 ‘문화재청장은 중요무형문화재를 지정하는 경우 해당 중요무형문화재의 보유자(보유단체를 포함한다)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온 국민의 핏속에 흘러다니는 아리랑인데, 누구를 보유자로 지정할 것이며 어떤 단체를 보유단체라 할 수 있겠는가. 억지로 지정하려 한들 다툼이 생기고 비웃음만 살 게 뻔하다. 김치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려 해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래서 무형문화재를 좀 더 폭넓게 정의하고 굳이 보유자·단체를 지정하지 않아도 되게끔 한 ‘무형문화유산 보전·진흥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어서 통과되길 바란다. ‘전국 아리랑’은 서울 공연 후 남북 아리랑 합동공연도 추진할 계획이다. 꽉 막힌 남북관계가 아리랑으로 다소나마 풀린다면 그 또한 반가운 일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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