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등록금으로 교직원연금 내준 대학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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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 교직원들이 내도록 돼 있는 사학연금 보험료(개인부담금)를 대학들이 대신 내준 것으로 드러났다. 44개 대학에서 모두 208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는 등록금이 주 수입원인 교비회계가 주로 쓰였다. 교직원들이 자기 월급에서 내야 하는 돈을 대학들이 등록금으로 내준 셈이다.

 이 같은 내용은 교육부 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하지만 교육부는 3일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해당 대학들의 명단 공개를 거부했다. 더욱이 교육부는 유용된 자금을 회수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부가 비리 대학들을 감싸고 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교육부는 이날 “대학 29곳, 전문대 7곳 등 모두 39곳의 사립대에서 지난해까지 사학연금 개인부담금 등 교직원들이 내야 할 돈 1860억원을 대신 내준 것으로 감사 결과 확인됐다”고 밝혔다. 앞서 2011년과 지난해 또 다른 대학 5곳이 모두 220억원을 대납했다가 적발된 것을 감안하면 유용된 돈은 44개 대학 2080억원에 이른다. 1860억원 중 70.2%는 교비회계에서 지급됐다. 교비회계의 주 수입원은 등록금이다. 사립대 평균 60%이며 90%가 넘는 대학도 있다.

 이들 39개 대학 중 23곳은 교직원 노조와 대학이 단체협약에 ‘교직원 사학연금 보험료를 대학이 낸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나머지 대학들은 내부 결재(8곳), 내부 규정(5곳), 이사회 의결(1곳) 등을 통해서였다.

 사립학교 교직원들이 퇴직 또는 사망 뒤 받게 되는 사학연금은 보험료의 50%를 개인이 내고 나머지는 국가와 학교법인이 분담하게 돼 있다. 직장을 퇴직한 뒤 받게 되는 국민연금을 재직 중에 직장인과 회사가 반반씩 내는 것과 유사하다. 그간 사립대 법인 중 상당수는 재정 여건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법인이 내야 할 부담금을 등록금으로 대납해 물의를 빚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교직원 개인들이 내야 할 개인부담금까지 대신 내줬다는 점에서 더 충격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 소재 사립대 교수는 “사립대 교직원의 처우가 이미 지나치게 높다는 여론 때문에 교직원 임금 인상이 어렵자 대학들이 이런 방법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립대의 한 교수는 “재단이 교직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단체협약에 이런 내용을 집어넣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들 대학이 교직원 대신 낸 개인부담금은 2006년 137억원, 2008년 216억원, 2009년 264억원, 2011년 339억원 등 매년 눈덩이처럼 커졌다.

 교육부는 2011년 일부 대학 감사를 통해 이런 사실을 파악했다. 하지만 사태가 커질 때까지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교육부가 일찌감치 단속을 강화했다면 2011년과 지난해에 걸쳐 2년 동안에만 494억원이 새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문제를 일으킨 대학들의 명단조차 이날 공개하지 않았다. 교육부 정영준 기획감사담당관은 “대학들이 재발 방지를 약속한 만큼 명단은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미 교비에서 나간 돈을 회수할 의지 역시 보이지 않았다. 정 담당관은 “단체협약 자체가 무효가 되지 않는 한 개인부담금 환수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교직원들의 개인부담금을 대학들이 개인 명의로만 납부했다면 적법하다는 법률 자문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보다 대학 반발만 우려해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사립대 교수는 “단체협약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실정법보다 우선할 순 없다”면서 “이제라도 교직원들은 대학이 대신 내준 돈을 자진 반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거용 대학교육연구소장(상명대 교수)은 “학교가 교직원 대신 개인부담금을 낸 것은 엄연한 불법”이라며 “어떤 방법으로든 환수 조치해 학생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들의 이런 행태를 몰랐던 학생들로부터 분노의 목소리도 나온다. 연세대 행정학과 황성호(26·4학년)씨는 “사립대 교직원은 연봉이 높기로 유명한데 교직원들의 개인부담금을 대학이 학생들 동의도 없이 대신 내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성시윤·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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