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세상읽기

박 대통령 방중 이후 해야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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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강일구]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베이징의 한인 밀집 지역인 왕징(望京)에 ‘대성산관’이란 북한 음식점이 있다. 미모의 북한 여성들이 가무 공연을 펼쳐 인기다.

지난주 베이징 방문 길에 지인 몇 명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한 친구가 맥주를 시켰다. 북한 맥주 중에선 대동강 맥주, 그중에서도 2번 표시가 붙은 맥주가 가장 맛이 있다는 설명과 함께다.

 한데 종업원이 갖고 들어온 게 달랑 두 병이다. 사람은 여럿인데 더 갖다 달라 하니 난색을 표한다. 나중에 사정을 알아보고 놀랐다. 중국의 북한 압박 조치가 여기에서도 작용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최근 대북 강경 정책을 펴는 건 주지하는 바다. 중국이 북한 금융기관에 제재를 가한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손님에게 맥주를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북한 식당의 현실을 보니 그 강도가 피부로 느껴졌다.

 베이징에서 만난 한국인 중국 전문가는 “중국이 이젠 북핵에 반대한다는 걸 공개적으로 말한다”며 “과거와는 분명 다른 행태”라고 말했다. 중국인 학자는 “예전엔 마음에 담고만 있던 걸 지금은 밖으로 표출하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대북 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있는 것인가. 중국인들은 이런 질문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왜 그럴까. 일부 변화가 있지만 한국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한·미·중 공조 차원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시진핑(習近平)의 중국이 현재 추구하는 건 중국꿈(中國夢)이다. 중국꿈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한 대외 정책 중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가 가장 중요하다. 지난달 미 캘리포니아의 랜초미라지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열심히 설명했지만 동의는 얻지 못한 정책이다.

 신형대국관계란 간단히 말해 미·중 양국이 상호의 핵심이익을 존중하는 가운데 협력하자는 것이다. 글로벌 리더로서의 미국의 지위는 인정하겠지만 적어도 아시아 역내에선 중국의 위치를 이젠 미국이 존중해 줬으면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중국은 신형대국관계 구축이라는 큰 틀에서 주변국가와의 관계도 조정 중이다. 북한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과거엔 진영 논리, 또는 전통적 우호관계라는 측면에서 북한 편을 든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신형대국관계에 따라 중국이 아시아의 리더로 자리 잡으려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 북한의 잘못에 대해서도 준열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중국의 옌쉐퉁(閻學通) 칭화대학 교수가 말하는 중국 외교의 세 가지 변화가 눈길을 끈다.

 첫째, 중국 외교가 과거 경제이익을 주로 따졌다면 이젠 정치이익을 더 생각한다. 둘째, 국제사회에서 보다 책임을 지려 한다. 셋째, 안보 문제에 더 적극적이다.

 중국이 현재 북한에 대해 취하고 있는 단호한 정책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중국이 추구하는 국가발전 전략,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외교정책의 변화에 따라 북한에 대한 정책 또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한·미의 북한 압박에 동참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건 무리다. 이는 앞으로 평생 중국과 이웃해 살 수밖에 없는 운명체의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 하나를 던져주고 있다.

 중국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의 필요성이다. 중국은 크다. 넓고 또 깊다. 광대한 영토를 무대로 수천 년의 역사가 종횡으로 펼쳐진 까닭에 평생 읽어도 다 읽을 수 없는 두꺼운 책이라고 이야기된다.

 그런 중국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이젠 국가적 차원에서 국내 정권의 변화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중국을 연구·분석할 ‘중국전담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전략적 높이에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중국을 다룰 기구가 요구된다.

 신설 기구는 두 가지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는 ‘중국 컨트롤 타워’ 기능이다. 어떤 한 기구가 방대한 중국 전체를 상대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국내에 산재한 여러 중국연구기관이나 중국교류단체를 활용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신설 중국전담기구는 이들 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이들이 얻는 각종 정보를 취합·축적하는 한편 이들의 중국 연구를 국내 수요에 맞게 유도해야 한다. 또 이들이 각각 확보하고 있는 거대한 인적 네트워킹을 국가의 필요에 따라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중국 서비스 센터’ 기능이다. 축적한 중국 정보를 기밀사항 외엔 일반에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똑같은 중국 정보를 얻기 위해 중복 투자하는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이는 하찮은 중국 정보 하나 얻기 힘든 현실을 감안할 때 매우 중요하다.

 이럴 때 우리의 대중 연구는 불필요한 힘의 낭비를 막고 효과적으로 그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한정된 중국 관련 인적·물적 자원을 갖고 앞으로 열리게 될 ‘중국의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이 될 것이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은 대성공이었다. 그렇다고 앞으로의 중국 관련 일이 술술 풀릴 것이라 기대하는 건 너무 순진하다. 새로운 한·중 20년을 열기 위해선 새로운 대중 대비가 이뤄져야 한다. 준비하는 자만이 미래를 얻을 수 있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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