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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의 여류시인 허난설헌 무덤발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조 중엽 최대의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무덤이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지월리에 있음이 확인됐다. 학계에서 오랫동안 궁금해 여겨오던 이 여류시인의 안식처는 그녀의 시가 종산 인광주 경수산에서 연세대국문학교수 김동욱박사에의해 쉽사리 판명됐다.
김박사는 4일 봄비가 내리는 일요일임에도 친정인 천천허씨 및 시가인 안동김씨 두종친회사람들과 함께 길을 물어 찾아나섰다. 김박사는『홍길동전』의 저자 허균등 허씨 종산에있는 용인에 난설헌의 시비를 금년내 세우게 됨에따라 그녀의 무덤을 수소문하게 됐다고 그간의 경위를 말한다.
난설헌의 무덤은 경안에서 동으로 시오릿길. 한강지류인 경안천이 굽이굽이 휘돈 외딴 봉우리 경수산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위로 시아버지 김담을 모시고 오른편에 있는 남편 김성립의 봉분과는 나란히 하였으며 바로 밑의 허물어진 고총은 그녀의 단 하나 아들이었던 아기무덤으로 일컬어 온다고 후손들이 설명했다.
앞에서 이조 전기의 미출한 문인석이 한쌍 이끼에 덮여 긴세월의 풍상을 간직하고 있는데, 비석이 없음은 물론 상석에 마저 아무런 명이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수기의 그곳 고충들 가운데 난설헌의 봉분에는 유난히 바위옷이 곱게 덮여있다.
역대 여류문인중 제1인자로 지목되는 난설헌은 임진왜란 직전인 1563년 강릉에서 태어나89년 서울에서 26세로 요절했다. 경상감사 허엽의 6남매중 다섯째. 본명은 초희로 허균의 바로 손위 누이이다. 문장가의 가문에서 자란 그녀는 그림의 신사임당과 더불어 어깨너머 공부로 일가를 이룬 본보기 여성이다.
14세에 김씨네로 출가했으나 결혼생활의 불만이 시 귀절마다 표현돼었으며 소생들을 어려서 잃었다. 그녀의 생활은 낭만과 갈등의 연속이었으며 시고가 굉장히 많았다하나 허균이 간수하고 있던 한시 1백42수가 사후 18년만에 중국사신 주지번에의해 북경에서 초간,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비록 규중여성의 작품이지만 서애 류성룡, 지봉 이수광등 대유학자들이극진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심지어 일본서까지 선풍을 일으켜 중간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생애와 일화는 전혀 전하는 것이 없다.
이날 김박사와 동행한 허씨 종친회장 허강씨는 처음 참배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이굿에도 비석을 세우겠다고 다짐했다.<이종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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