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회심의」라는 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8일밤 국회재경위는 외환은행법개정안을 공화당방계에 따라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다음날 법사위는 야당의원들이 출석하기도 전에 공화당 의원만으로 상기 법안을 전격적으로 통과시키고 운영위원회에 회부했다. 69회 임시국회의 회기말은 30일인데 이 법안을 이번 회기중에 기필코 통과시키려는 공화당과 이를 기어이 저지하려는 신민당은 격돌의 기세를 보이고 있다.
이와같은 기세가 여야간의 흥정과 타협으로 사라질지 알 수 없지만 회기말을 앞둔 국회가 외환은행법 개정안 같이 중대한 법안을 변칙사태의 연속으로 각 분과위를 통과시키고 국회본회의에서도 집권당이 수의 위력을 빌어 강행 통과시키고자 시도한다는 것은 의회민주정치의 고유한 절차와 정신에 비추어 심히 못마땅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지난4월1일에 소집된 임시국회는 권문교해임건의를 둘러싸고 공화당의「항명파동」이라는 부산물을 자아냈고, 서울시정에 대해서 특별국감을 하겠다고 대정부질의를 펴고, 미 정찰기 피격사건이 자아낸 정세긴장에 따라 일련의 협의를 거듭했을 뿐, 그밖에는 별로 이렇다할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국회는 그 고유한 업무인 입법사업을 등한시하고 기대안건처리에만 열을 오리고 있다가 회기말을 며칠 앞두고 급작스러이 외환은행법개정안 같은 중요법안을 상정 심의하게 되었으므로, 여야간의 의사를 소통하고 견해를 접근시킬 기회가 마련되지 않아 변칙통과→극한대립의 상황성립을 되풀이하게 된 것이다. 회기말이 임박해서 중요법안을 불쑥 국회에다 내놓는 정부의 악습이나, 또 이를 받아들여 변칙적인 수법으로 재빨리 처리하는 공화당 국회의 악습은 결코 작금에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악습으로 말미암아 의회정치의 존재의의가 적지않게 위협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런 악습의 유래하는 근본 소이는 행정부 각료들이 집권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를 한낱 형식적인「협찬기관」으로 간주하고, 또 집권당 소속 의원들이 국회의 권능을 살려 행정부의 독주를 막는데 힘쓰느니 보다 정부시책에의 맹종을 당에 대한 충성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악습과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는 행정부 각료는 물론, 여당의원들도 각기 지켜야할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가에 관해 엄중한 반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권당의원들이 대야태도에 관해서도 일언한다면 재경위에서 야당의 발언권을 봉쇄하고 날치기로 안건을 통과시키는 처사나 법사위에서 야당의원이 출석도하기 전에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는 처사는 그 모두가 의회정치의 형식과 절차를 철저히 저버리는 것이요, 국회에서의 야당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jt이나 다름이 없다.
압도적 다수의 의석을 가진 대 여당이 정정 당당하게 안건을 처리하지 못하고 항상 변칙적 수법을 가지고 국사를 처리하려 든다는 것은 다수당으로서의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신의 결여가 진리의 희박에서 나오는 것이건, 혹은 자체의 분열위기에서 나오는 것이건, 대야투쟁에 있어서 설득·토론·타결을 부인하는 방향으로 표시된다고 하면 그것은 의회정치의 존재를 부인하는 적신호가 되는 것임을 각별히 지적해 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