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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박근혜, 외세 힘 빌어" … 한국 쪽 기우는 중국 겨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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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강원도 안변 7사단 예하 제851부대의 포사격 훈련을 참관했다고 노동신문이 1일 보도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 이후 중국을 ‘외세’로 간주하는 언급을 내놓았다.

 박 대통령이 방중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지 7시간도 지나지 않은 1일 새벽 1시48분,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지난달 27일 한·중 정상회담과 29일 칭화대(淸華大) 연설에서 내놓은 박 대통령의 ‘북핵 불용’과 ‘핵·경제 병진노선 불가’ 발언 등에 대해 “우리의 존엄과 체제, 정책노선에 대한 정면도전이고 용납할 수 없는 중대도발”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박근혜의 심보는 외세의 힘을 빌어 우리를 무장해제시키고, 반(反)공화국 국제공조로 우리 체제를 변화시켜 보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외세의 힘을 빌린다’는 표현을 쓴 건 중국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 후 유엔의 대북제재에 중국이 동참하자 “책임 있는 큰 나라들이 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면서 우회적으로 중국을 비판한 적이 있으나 이후론 중국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해 왔다. 그래서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북공조 분위기에 대해 위기감과 함께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날 조평통은 박 대통령의 직책을 생략한 채 실명을 거론하면서 “우리(북) 존엄과 체제를 심히 모독하는 망발” “허망하기 그지없는 개꿈” 등의 표현으로 대북 관련 발언을 맹렬히 비난했다. 이에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남북 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언행을 자제하고 절제할 필요가 있다”며 “자신들의 주장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나름의 예의를 갖추고 품격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북한의 거친 비난에 대해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례 없는 한·미·중 3각 대북공조에 포위당한 듯한 북한의 위기감이 느껴진다”고 분석했다. 그는 “핵·미사일 도발 후 대화를 통한 협상국면으로 나가려던 북한은 6자회담 재개가 난관에 봉착하고, 박근혜정부와의 당국회담마저 무산되면서 남북대화를 통한 북·미 협상이란 구상도 꼬이는 바람에 한마디로 위기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런 상황에서 5월 초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6월 미·중, 한·중 정상회담까지 더해지며 일련의 압박이 가해지자 비난을 쏟아냈다는 얘기다.

 북한은 중국 지도부의 언급 내용을 각색해 박 대통령이 면박을 당한 듯한 왜곡된 주장도 내놓았다.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지난달 28일 박 대통령에게 “남북한이 같은 민족으로서 서로 선한 마음으로 대하라”고 말한 대목을 두고 조평통은 “동족을 얼마나 쏠아대면서 민망하게 놀아댔으면 ‘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충고까지 받았겠는가”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당분간 핵 문제나 대외정책에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입장도 강조했다. 조평통은 “박근혜는 새로운 남북관계니 새로운 한반도니 하며 우리에 대해 또다시 변화 타령을 하였는데, 변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남조선 정권”이라며 “우리의 핵은 어떤 경우에도 흥정물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언급으로 볼 때 북한은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인 오는 27일까지 긴장 분위기를 이어가며 대남·대미 비난전을 펼친 뒤 향후 정세를 봐가며 돌파구 마련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북한은 달라진 분위기의 중국 지도부와 과거 정부와는 다른 틀의 남북관계를 추구하는 박근혜정부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도 노출했다. 이날 조평통은 박 대통령을 맹비난하면서도 “우리는 박근혜에 대해 지금 마지막 인내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다”며 “백해무익한 대결적 언동을 걷어치우고 민족적립장에 돌아서야 한다”고 대북정책의 전환을 압박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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