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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새마을, 우리 동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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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10년 넘게 살아온 동네에 지난해 말 뉴타운, 즉 대규모 재개발 아파트 단지가 완공됐다. 단지 바로 이웃에 사는 탓에 그동안 얼굴 찌푸릴 일이 많았다. 철거 과정에선 옛 살림집들이 흉물로 변해가는 걸 지켜봐야 했고, 건설과정에선 소음에 시달렸다. 공사 차량 때문에 원래 있던 길도 돌아가야 했다. 뉴타운 완공은 이 모든 게 끝난다는 점에서 반가웠다. 새 주민이 잔뜩 이사 오는 만큼 주변에 각종 편의시설이 늘어나리라는 기대도 가졌다.

 하지만 이 단지의 분양 무렵에도 그랬듯, 경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여러 달이 지나도록 단지 내 상가에 빈 자리가 여럿이다. 당초 재개발계획에는 도서관도 들어설 것으로 알려졌는데 해당 부지는 잡풀만 무성하다. 듣자니 땅은 마련됐어도 건물 지을 돈이 지자체에 없단다. 게다가 뉴타운 아파트 주민들 명의로 최근 내걸린 플래카드는 암만 봐도 아름답지 않다. 행복주택에 반대하는 내용이다. 인근에 들어설 행복주택은 철도 위에 지어질 계획인데 행복주택은 필요 없고 철도 소음이나 해결하라는 게 플래카드의 요지다. 뉴타운 덕에 올드타운 주민이 된 입장에선 좀 의아하다. 뉴타운이 들어서기 수십 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철도다.

 ‘뉴 타운’을 곧이곧대로 옮기면 ‘새 마을’이다. 1970년대 농촌에서 활발하게 벌어진 새마을운동은 서울에서 자란 중년세대의 기억에도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특히 새마을 노래의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하는 노랫말대로 초가집 개량 전후, 울퉁불퉁 마을 길 포장 전후를 비교하는 사진은 요즘 성형외과의 수술 전, 수술 후 비교 사진 못지않게 강렬했다. 물론 이런 주거환경 개선 작업은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을 내건 이 운동의 일부였을 따름이다.

 비교 사진이라면 우리 동네 뉴타운의 공사 전후도 강렬하다. 게다가 뉴타운 안을 둘러보면 상가는 썰렁할망정 체육시설·보육시설이 곳곳에 있고 사이사이 조경도 훌륭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뉴타운 단지 전체를 밖에서 보면 고층 건물로 옹벽을 쌓은 일종의 섬 같다. 기존의 동네와 어떻게 소통할지 크게 배려한 흔적이 없다. 뉴타운 같은 재개발 열풍이 뜨거웠던 무렵, 어느 건축가가 한탄하듯 한 말이 떠오른다. 건설회사들이 건물만 지을 줄 알았지 도시를 설계할 줄 모른다고. 그가 말한 도시설계는 건물과 도로를 어디에 만드냐를 넘어 오가는 사람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을 하느냐가 포함된 개념이었다.

 서울처럼 인구 밀집된 대도시에서 뉴타운이든 행복주택이든 기존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고 지을 도리가 없다. 주거 안정, 경기활성화 같은 명분으로 기존 주민의 불만을 누르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과거 새마을운동이 마을 앞길을 넓혔다면, 이제 새로운 주거집적시설의 건설은 기존 주민과 미래 주민들 사이에 길을 내는 일부터 고민해야 할 듯싶다.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