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스펙 없어도 3000시간 교육 땐 취업시킬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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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호 12면

조동원 대표가 교육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를 상징하던 빨간 염색머리는 사라졌지만, 시계와 아이디어 수첩은 여전히 빨간색이다. 조용철 기자

“학벌과 스펙에 매몰된 사회를 벗어나야 창의적인 인재를 키울 수 있어요. 다 아는 얘기죠. 하지만 말뿐이 아니라 진짜로 학벌·스펙과 상관없는 창의적인 인재를 뽑고 육성하고 취업시키는 ‘모델’이 없었어요. 제가 그런 성공 경험을 만들어 사회에 퍼뜨릴 겁니다.”

스펙 타파 창조 대학 만든 조동원 ‘워커스’ 대표

 거침이 없었다. 스스로 ‘무모하다’면서도 도전을 즐기는 표정이 역력했다. 한나라당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빨간색을 상징으로 삼아 세상을 놀라게 했던 열정은 여전했다. 조동원(56) ‘워커스’ 대표 얘기다.

 지난해 말 대선 때 홍보기획본부장으로 일했던 새누리당을 떠난 그를 20일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동안 준비해온 ‘세상을 바꾸는 학교, 워커스(Walkers)’가 본격적인 출범을 앞두고 있어서다. 그는 워커스를 통해 학벌과 스펙에 매몰된 사회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보겠다고 다짐했다.

광고·영상·문화콘텐트 기업들과 제휴
워커스(walkers.or.kr)는 교육기관이다. 하지만 기존의 학원이나 학교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주식회사도 법인도 아닌 사회적 협동조합 형태를 취한 게 특이하다. 그는 대표 멘토’라는 직함으로 사업을 총괄할 예정이다.

 당연히 교육생의 학력·학벌은 따지지 않는다. 뽑을 때는 물론 교육기간 중에도 학벌이나 스펙을 들여다 볼 생각이 아예 없다.

 특이한 점은 이 밖에도 많다. 워커스는 학비를 받지 않는다. 아예 없는 건 아니다. 5개월에 500만원의 학비를 책정했지만 조건부 후불제다.

 “5개월 교육과정을 마친 교육생이 취업을 하거나 창업할 때까지 지원합니다. 취업하면 학비를 2년에 걸쳐 나눠 갚게 할 생각입니다. 교육 시작 전에 후원금 납입서약서를 쓰게 할 겁니다.”

 돈도 안 받고 취업까지 시켜주겠다는 약속에서 짐작할 만하지만 교육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기업체에서 최소한의 일을 맡길 단계, 흔히 말하는 대리급이 되려면 3000시간 정도의 실무 경력이 필요합니다. 저희는 5개월의 교육기간 동안 3000시간 분량의 교육을 할 겁니다. 계산해볼 필요 없어요. 5개월 동안 잠자는 시간 빼고 전부 다예요. 엄청난 과제물이 나갈 겁니다. 다른 생각 할 틈 없이 몰입하게 할 겁니다. 다만 지겹게,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교육생 마음속 밑바닥에 있는 열정까지 뽑아낼 도전적인 과제들로 구성될 겁니다.”

 교육비를 후불로 받기 때문에 초기 비용은 후원을 통해 해결할 예정이다. 광고회사 이노션 월드와이드와 SK플래닛이 후원사를 맡았다. 미디어그림, 신시컴퍼니,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등 여러 회사가 참여한다. 기업들이 동참한 것은 조 대표의 가능성을 믿어서다. 창의력 교육에 관한 한 조 대표는 손꼽히는 전문가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는 광고계 현업에 있을 때부터 ‘조동원의 카피세상’ 등을 통해 150여 명의 후진을 길러냈다. 문화사업을 하며 중·고생은 물론 유치원생 대상의 창의력 교육까지 해봤다.

 하지만 교육이 잘돼도 막상 취업이나 창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정작 사람을 데려다 쓸 기업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초(超)연결 채용시스템’이라는 말을 꺼냈다. 워커스에 참여하는 후원 기업들은 학생들에 대한 교육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특정 교육생이 어떤 과제를 만들어내면서 성장하는지를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다.

 “기업 입장, 인사팀 실무자가 돼보세요. 창의적 인재를 뽑고 싶지만 사람 속을 어떻게 다 꿰뚫어봅니까. 방법이 없으니까 학벌을 따지는 겁니다. 우리는 말로만 스펙 타파가 아니라 창의력을 발휘하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인재를 뽑아내는 ‘경험’을 기업들에 안겨줄 겁니다.”

 사실 이 일이 조 대표에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등 지금도 생생한 유명한 광고 카피를 만든 그다. 한창 광고업계에서 잘나가던 그는 2000년 이후 영어마을 운영, 영화제작 등 문화사업에 손을 댔다.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엄청난 어려움도 겪었다. 재기를 꿈꾸던 그가 손을 댄 게 창조산업 분야 후진 양성이었다. 조 대표는 2011년 ‘SOS 창조학교’를 운영했다. 학벌 등 겉치레보다 창의력 육성에 초점을 맞췄고 상당한 성과도 거뒀다. 그러던 중 당시 한나라당에서 연락이 왔다. 박근혜 당시 대표와도 만났다. 그러곤 당의 홍보기획본부장으로 들어갔다.

 “사실 정치를 한다고 오해를 많이 받았지만 저로서는 하던 일의 연장선이기도 했어요. 당명과 로고를 바꾼 것도 물론 중요했지만 제가 해오던 스펙 타파와 창의교육에 관해서도 많은 성과를 얻었습니다. 총선 공약으로 다듬어진 ‘스펙 타파 청년취업 시스템’이 그겁니다.”

 당을 떠난 뒤 바로 뛰어든 게 교육사업인 것도 연속성을 위해서다. ‘SOS 창조학교’의 개념에 우리 사회의 고질인 학벌·스펙 문제 해결책을 더해 구체화한 셈이다.

‘이야기가 숨쉬는’ 재래시장에 터 잡아
교육생에게 상당한 혜택이 있는 만큼 전형 과정도 만만찮다. 7월 한 달에 걸쳐 전형이 진행된다. 희망자는 7월 6일까지 홈페이지에 원서를 내야 한다. 기존 취업 시스템에서 소외된 28세 이하 젊은이가 대상이다. 교육 후 취업해야 하므로 남자는 병역필이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어떤 제한도 없다.

 다음에는 1차 온라인 테스트를 거친다. 워커스는 이 과정에서 ‘톡트(TOCT·Test Of Critical Thinking) 위원회’와 손을 잡았다. 톡트는 2009년 시작된 국내 유일의 비판적 사고·창의력 측정 테스트다. 많은 기업과 대학에서 인성·적성검사의 하나로 채택하는 등 자리를 잡았다.

 “미리 준비해서 볼 수 있는 시험이 아닙니다. 삶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창의적 적성을 보자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톡트가 우리의 취지와 가장 잘 맞는다고 판단했어요.”

 톡트를 이용한 온라인 테스트를 통과하면 과제를 완수하는 오프라인 테스트와 실무 인터뷰 등을 거친다. 교육과정은 기본적으로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 증진을 위한 내용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타성과 협업 능력을 키우는 데도 초점을 맞춘다.

 강의장, 그러니까 ‘학교’의 위치도 뜻밖이다. 그가 택한 입지는 마포구 망원동의 재래시장인 ‘망원시장’ 한가운데에 있다. 이름을 워커스로 지었듯 그는 창의성은 머리가 아니라 발에서 나온다고 믿는 사람이다. 창의적이란 것은 ‘자기의 생각을 남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이라는 게 조 대표의 얘기다. 전통시장은 늘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곳이기 때문에 학교 터로 잡았다.

 그는 지난해 말 새누리당을 떠난 후 본업이라 할 광고 관련 일을 맡지 않았다. 집권여당의 요직에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제의를 모두 마다하고 워커스 업무에만 몰두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일을 맡겠다고 했다.

 “워커스를 위해서라는 전제 아래 어떤 일이라도 맡을 생각입니다. 저 개인만을 위한 게 아니니까요. 워커스에 직접 일을 맡겨도 좋고, 후원 기업으로 들어와도 좋습니다.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과는 적극적으로 함께 일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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