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빠르게 상승 … 원화가치·코스피는 연중 최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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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돈줄을 죄면 문제는 신흥국에서 생긴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찍어낸 풍부한 달러는 세계 각지의 신흥국으로 흘러가 자산 시장에서 거품을 만들고 통화가치를 올려놨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본격적인 출구전략을 시작할 경우 신흥국에서 글로벌 자금이 빠르게 빠져나가면서 금융 시장에 충격을 주게 된다.

 현재로선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외환시장이다. 이달 들어 양적완화 축소 우려가 제기되며 인도·브라질·남아공을 비롯한 주요 신흥국에서 주식·채권·통화가치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미국의 긴축에 따른 자금 유출이 신흥국의 외환위기로까지 연결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1994년 연준이 다섯 차례에 걸쳐 1년 만에 기준금리를 3%에서 2.5%포인트나 올리자 달러 가치가 급등하며 신흥국은 달러 유동성 부족에 시달렸다. 그 결과 94년 멕시코의 페소화 위기로 이어졌고 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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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가 전날보다 14.9원이나 급락하며(환율상승) 연중 최저치(달러당 1145.7원)를 기록한 것도 시장의 불안감을 보여준다. 김홍달 우리금융경영연구소장은 “한국은 3200억 달러를 넘는 외환보유액과 견고한 경상수지 흑자 구조를 가지고 있어 다른 신흥국과는 상황이 다르다”면서도 “자본 유출입이 쉬운 경제구조를 감안해 정부가 통화스와프 한도 확대 등 외환시장 불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악재는 빠른 금리 상승이다. 외국인들의 공세적인 국채 매도는 금리를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달 9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했지만 당일 2.55%였던 3년물 국채금리는 20일 2.94%까지 치솟았다(국채값 급락). 은행들은 발 빠르게 대출 금리를 올리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17개 은행 중 3곳이 지난달 신용대출 금리를 올렸다. 하나대투증권 양경식 투자전략실장은 “외국인 자금 유출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없어졌다고 본다”며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 내수와 부동산 경기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들의 이탈 조짐은 국내 증시에 대형 악재다. 외국인들은 지난 7일 이후 10일 연속 순매도에 나서며 4조3700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20일에도 외국인들이 5000억원 가까이 순매도해 코스피지수가 연중 최저인 1850.49로 떨어졌다.

 본지가 이날 증권사들의 리서치센터장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한 결과 대부분은 “외국인들의 자금 이탈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단, 코스피지수가 주가순자산비율(PBR)의 1배 수준인 1850선에서 바닥을 다질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IBK투자증권 임진균 리서치센터장은 “한국 기업들의 주가는 기업가치에 비해 세계에서 가장 저평가돼 있다”면서도 “당분간 경기민감주보다는 통신·레저 같은 내수주 위주로 접근할 것”을 권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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