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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잊혀진 전쟁'서 '잊혀진 승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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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안호영 주미대사,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 루이스 유잉 한국전참전용사협회 대표(왼쪽부터)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알링턴 펜타곤의 ‘한국전 전시관’ 개관식에서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뒤쪽에 ‘잊혀진 승리(The Forgotten Victory)’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뉴시스]

“많은 미군이 한국전쟁에서 부상하고 죽었지만 미국인들은 그동안 한국전 참전 군인들에게 합당한 존경과 감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이제야 조금 마음이 풀린다.” 1950년 9월 이름도 생소했던 ‘코리아’에서 벌어진 전쟁에 투입된 19세 청년은 어느덧 주름이 깊게 파인 81세 노인으로 변했다. 당시 미 해병대원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제시 잉글하트는 18일(현지시간) 워싱턴 근교의 미 국방부 청사(펜타곤) 1층에 마련된 한국전 기념전시관 개관 행사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기쁘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준 한국인들에게 감사한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에서 6·25는 ‘잊혀진 전쟁’으로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1939~45년), 그리고 미국에 깊은 상처를 남긴 베트남전쟁(65~73년)이란 두 개의 큰 전쟁 사이에 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잊혀진 전쟁’에서 희생당한 미군만 5만4000명에 달한다. 베트남전의 5만8000명보다는 적지만 전쟁기간이 3년으로 훨씬 짧았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그런 한국전쟁을 기억하자는 움직임이 미국에서 뒤늦게 일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정전협정(53년 7월 27일)을 맺은 지 60주년을 맞는다. 특히 미국의 도움으로 전쟁의 상처를 딛고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런 움직임도 가속이 붙고 있다. 그 결과물이 이날 펜타곤에 문을 연 ‘한국전쟁 기념전시관(Korean War Exhibit)’이다. 이미 워싱턴 한복판인 링컨기념관 근처에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가 있다. 하지만 조각공원인 데다 건립 주체가 참전군인들이었다. 반면 펜타곤 전시관은 미 연방정부가 50만 달러(약 5억6000여만원)를 들여 건립한 박물관 형식의 첫 기념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개관식에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직접 참석한 것도 그 때문이다. 헤이글 장관은 “어린 시절 네브래스카주에 살 때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부친이 한국전에도 참전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떠나던 날 온 가족이 배웅했던 걸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헤이글 장관의 부친은 곧 전쟁이 끝나는 바람에 한국에 파병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베트남전 참전용사 출신의 첫 미 국방장관인 헤이글은 “나는 한국처럼 짧은 기간에 이만큼 놀라운 발전을 이룬 나라를 알지 못한다”며 “한·미 동맹보다 더 나은 동맹도 없다”고 강조했다. 안호영 주미 한국대사는 축사에서 “지난 1일 부임 첫 일정으로 한국전 기념비를 찾았었다”며 “그 이유는 참전용사들께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안 대사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잘 모른다는 이유에서 붙여진 ‘잊혀진 전쟁’이란 별칭을 앞으로는 ‘잊혀진 승리’로 바꿔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펜타곤 전시관은 1층 5번 회랑과 6번 회랑이 만나는 공간에 마련됐다. 야외 휴식공간이나 2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어 국방부 직원과 방문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전시관 입구엔 ‘잊혀진 승리(The Forgotten Victory)’라는 문구와 함께 한국전의 동영상과 사진 등이 방영되는 15개의 모니터가 맨 먼저 눈에 띈다. 그 뒤로 복도에는 당시 사용됐던 무기와 전투복 등이 전시됐다. “한국에서 전쟁 발발”이란 제목의 기사를 1면에 크게 실은 롱비치인디펜던스 신문 등도 전시돼 있다. 전시관은 한 해 10만 명 이상이 몰리는 ‘펜타곤 투어 코스’에도 포함됐다.

 미 국방부 산하 한국전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사무국장인 데이비드 클라크 대령은 “이 전시관이 60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축하하고 한국전 참전 미군과 한국군의 희생을 되새기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관식에는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 이서영 국방무관, 그리고 한국전 참전용사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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