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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후다닥 뽑더니 … 과속 스캔들 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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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린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안방에서 라이벌 이란에 지고도 가까스로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오른 ‘최강희 축구’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한국 벤치를 향해 주먹감자를 먹였다. 한국 축구는 능욕을 당했다.

 한국 축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돌이켜보면 최 감독 선임은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축구협회는 2011년 12월 조광래 감독을 전격 해임했다. 특정 언론을 통해 경질 사실이 미리 알려져 홍역을 치르더니 새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다. 전북 현대에 남고 싶어하는 최 감독을 1순위에 올려놓았고 조중연 당시 축구협회장이 직접 나섰다. 조 회장은 현대 축구단 출신 송년모임에서 최 감독과 소주 5병을 나눠 마신 뒤 “한국 축구가 힘든데 팔짱만 끼고 있으면 사나이가 아니다”라고 설득했다. 최 감독은 마지못해 ‘본선 진출을 확정한 뒤 전북으로 돌아간다’는 조건을 달고 승낙했다.

홍명보 감독이 차기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그런데 축구협회의 감독 선임 과정이 또 다시 매끄럽지 못하다. 언론이 차기 감독으로 홍감독을 지목한 뒤에야 기술위원회가 소집됐다. 사진은 지난해 7월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진행된 훈련에서 홍 감독의 실루엣. [중앙포토]

 대표팀 감독 선임은 한 나라 축구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중요한 결정을 즉흥적으로 해왔다. 한국은 허정무→히딩크(2002년 한·일 월드컵), 코엘류→본프레레→딕 아드보카트(2006년 독일 월드컵), 핌 베어벡→허정무(2010년 남아공 월드컵)로 선수 교체하듯 감독을 바꿔 왔다. 일본은 월드컵을 주기로 4년에 한 번씩 감독을 뽑고 한 번 뽑으면 여간해서는 물리지 않는다.

 ‘시한부 감독’은 오해와 불신의 출발점이 됐다. 팀이 잘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위기가 닥치자 부작용은 생각보다 컸다. 선수들 사이에선 ‘어차피 본선에는 다른 감독이 올 것’이라는 안일한 분위기가 퍼졌다. 전북으로 돌아갈 거라는 말 때문에 ‘이동국·정인환 등 전북 선수만 총애한다’는 오해도 생겼다. 국내파와 해외파 사이에 앙금이 깊어지고 분위기도 이상해졌다.

 6월 열린 월드컵 최종예선 3연전에서 최 감독은 박주영·구자철·기성용 등 특급 자원들을 제외했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보다 팀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원칙이었다. “팀이 먼저”라는 최 감독의 말은 맞지만 뛰어난 선수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리더십은 보이지 않았다.

 최 감독은 월드컵 본선까지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눈앞에 승리에만 집착했고 베스트 일레븐을 확정 짓지 못하고 실험만 거듭했다. 특히 팀워크가 중요한 포백 수비 조합은 매 경기 구성이 달라질 정도로 안정을 찾지 못했다. 결국 최강희 축구는 “하프라인을 넘어서면 문전으로 공을 띄워 득점을 노리는 40년 전 축구로 회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축구협회가 전임 집행부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 특정 인터넷 매체가 ‘홍명보 차기 감독 확정’이라는 기사를 띄우고 뒤늦게 기술위원회가 요식적으로 소집되는 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다음 달 20일 개막하는 동아시아선수권에 맞춰 감독 선임을 서두르는 건 좋다. 그러나 정몽규 회장을 비롯한 몇몇 수뇌부의 의중에 맞춰 쇼핑하듯 골라선 안 된다. 훌륭한 감독을 뽑아 제대로 뒷받침하려면 축구협회가 지금 한국 축구에 필요한 리더십과 비전이 뭔지 고민해야 한다. 선임 절차도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최 감독이 맡았던 1년6개월 동안 한국 축구는 후퇴와 궤도 수정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잃어버린 18개월’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최 감독의 실패로부터 배워야 한다.

박린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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