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원점에서 재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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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영남권 5개 시·도가 치열한 유치전을 벌이면서 심각한 지역갈등을 불러왔던 동남권 신공항이 원점에서 다시 추진된다. 2011년 3월 국토부 신공항 후보지 평가단이 가덕도·밀양 후보지 2곳이 부적합한 것으로 결론을 내린 지 2년3개월 만이다.

 국토교통부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의 필요성을 파악하기 위한 항공수요 조사를 8월부터 시작한다고 18일 발표했다. 이 수요 조사에는 부산·대구·울산·경북·경남 등 5개 광역자치단체가 합의했다.

 4개항으로 된 합의문에 따르면 이른 시일 내에 항공수요 조사에 착수하고 신공항 규모와 기능 등 상세한 내용을 결정하는 타당성 조사는 지자체 간 합의를 거쳐 수요 조사가 끝나는 대로 시작하기로 했다. 관심의 대상인 신공항 입지에 대한 조사도 타당성 조사에 포함된다. 동남권 신공항은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사업으로 부산은 가덕도를, 경남은 밀양을 신공항 건설지로 제시했으나 두 지역 모두 기준에 맞지 않아 전면 백지화됐다.

 국토부는 이번 합의서를 바탕으로 이르면 다음 달 초 수요 조사 용역 발주를 공고하고 8월에 용역에 착수할 예정이다. 장영수 국토부 공항행정정책관은 “앞으로 지자체 간 합의를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가면 시간은 많이 걸리더라도 공정성과 객관성·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수요 조사 용역은 국제입찰로 진행해 투명성을 높이기로 했다. 이번 수요 조사에는 전환수요와 유발수요에 대한 조사도 포함된다. 이는 동남권 신공항이 생길 경우 인천공항 대신 이용하는 수요를 말하는 것이어서 승객 수가 크게 늘어나게 된다. 장 정책관은 “2011년 예측에 비해 김해공항 항공수요가 빨리 늘어나 영남권 신공항의 필요성을 재검토해 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자치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지난 정부 때 무산의 아픔을 겪었지만 신공항 건설은 이제 시작이다”고 말했다. 김범일 대구시장도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오랜 갈등을 넘어 신공항의 진전에 큰 획을 긋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신공항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각종 자료를 제공하기로 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신중한 입장이다. 박인호 김해공항가덕이전시민운동본부 공동대표는 “타당성 조사 때 입지와 배점을 둘러싼 갈등의 소지가 여전히 있는 만큼 차분하고 논리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밀양 신공항 유치 시민단체인 남부권 신공항 범시도민 추진위의 강주열 위원장은 “수요 조사 기간이 너무 길고 입지선정을 위한 로드맵이 빠져 문제”라고 지적했다.

 해당 지역 지자체들이 수요 조사 착수에 합의하긴 했지만 신공항 입지 선정까지의 과정은 여전히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타당성 조사에 포함될 입지 선정 기준과 방법에 대한 합의가 난항을 겪게 될 경우 또다시 지자체 간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부산발전연구원 최치국 박사는 “정부가 지금껏 어떠한 프로세스도 내놓지 못하다가 수요 조사 착수를 발표한 것은 바람직하다”며 “갈등을 빚지 않고 객관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정부와 5개 자치단체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진·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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