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회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재 얼마 남지 않은 이 해를 마지막 보내면서 다시는 금년 잡은 해가 내 평생에 없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것은 나의 신변에 가장 큰 변동이기도 하다.
지난 여름. 오랜 신양으로 고생하신 끝에 끝내 회춘을 못하시고 우세하신 선고를 여읜 일이었다.
하늘을 우러러볼 수 없는 죄인이 됐기 때문에 이 해가 저물도록 나의 마음은 이리도 설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다시는 있을 수 없는 진저리쳐지는 해가 지난해인가 보다.
그런데 설상에 가상으로 선달초순에는 또 흡앙하는 은사 가람선생을 여의게 되었다.
여름에 한쪽 어깨가 무너져 그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제 남은 어깨가 마저 무너져 버렸으니 어느 하늘 아래 활개를 칠 수가 없이된 몸이 되고 말았다. 두 분이 어쩌면 그리 꼭 같이 시조를 좋아하셨는데 이제 어디 가서 그 카랑 하시던 목청이며 소탈하신 그 웃음소리를 들겠는가 생각하니 분명히 이 해는 두려운 해임이 틀림없을 것 같다.
그러나 어버이와 스승을 여윈다는 일은 언젠가는 한번은 망해야 할 일. 내가 세모에 접어들어 가슴 그득히 두려움을 품고있는 이유는 또 다른데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무슨 압력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얼른 생각하기로 늙음의 문턱에 선 중년의 신세타령을 연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이 공포증은 그런 쑥스러운데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 스스로 늙음을 두려워할 만큼 무기력한 위인이 아님을 자처한다.
연탄 값이야 쌀값이 야를 비롯한 집안사람의 성화에 못 견디는 한 시정 인으로서의 공포증은 더욱 아니다. 그런 시정 적인 성화는 무시로 망하는 수난이기에 아예 흥미 밖에 속한다. 그러고 보면 내 스스로를 남산골 샌님으로 자처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마지고 보면 그런 기백조차 지니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도대체 나의 세이공포증이란 무엇일까. 늙음도 두렵지 않고 시정적인 생활고에도 초연하고 또 꼿꼿한 샌님으로 자처하는 것도 아닌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 확실히 무엇엔가 쫓기고, 그래서 두려운 것만은 틀림없다. 바쁘기는 곱절이나 더한데 막상 하는 일이 없는 이 생활이 커다란 압력을 내리고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시간. 세모에 접어들면서부터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새삼 깨닫고 있다. 시간을 빼앗기고 또 시간에 쫓기는 얼보다 더 초조하고 두려운게 없음을 실감한다. 거기 속박된 나임을 알고 있다. 인간이 생활의 편의로 날들어 놓은 시계이련만 사람들은 내게서 시간을 자꾸만 빼앗아간다. 시간만이 아니요, 자유까지 앗아간다.
시간이 지나감으로 해서 늙음을 재촉한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앞서 나는 너무도 당장에 할 일을 못하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있는 것이다. 【정병욱<서울대 문리대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