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 68년> (3) 「뉴스」 의 주역을 찾아|부산전화국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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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블행도 컸지만 억시게 재수가 좋은 한 해였읍니뎨이.』
부산시 의건신전화국의 손정순양(21)은 우선 지금도 살아있는 행운에 감사한다고 했다.
지난 3월 18일` 부산 전신 전화국 5층에서 불이 났을 때 5층에서 뛰어내렸다가 부상에 그치고 살아 난 화제의 .아가씨-.
신문에 보도된 사진으로 흰 「스커트」 에 두 팔을 벌리고 뛰어내리는 순간이 「렌즈」 에 잡힌 아가씨가 바로 손양이다.
『정말 앞이 카암 캄했어요. 눈을 딱 감고 그만-.』
그 날 손양은 여느 때와 같이 7시 몇분에 출근을 했다. 5층 교환실에서 1일 결산보고서를 쓰려끄 막 책상 위에 보고서 용지를 펴놓을 때였다.
『불이야!』하는 고함소리가 문쪽에서 들렸단다. 깜짝 놀라 소리가 난 쪽으로 갔을 때는 이미 4층에서 난 불길이 좁은 계단을 널름거리고 검은 연기가 5층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4백여 교환양들이 일하는 5, 6, 7층은 순식간에 수라장이 됐다. 불에 갇힌 것을 직감한 손양과 교환양이 한 덩어리가 되어 비상구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비상구의 계단에달려있는 사다리는 2층까지 밖에 없었다. 눈 앞이 안보였단다. 허겁지겁 되돌아 서긴 했으나 죽음의 공포 뿐 이었다. ,
연기가 스며들더니 빨간 불길이 사정없이 천장을 핥았다. 교환양들은 비상구를 통해서 6층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7층으로 피난했다.
갈팡질팡 하던 손양은 위로 올라가는 계단마저 막혀 방에 갇혀버렸다.
피난하지못한 손양은 사무실 서쪽에있는 80센티 쯤 되는 「스팀」 의 「라디에이터」 위에 올라서 창을 열어봤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먼저 빠져나간 동료 몇 명이 아물아물 보였다. 동료들이 『남쪽으로 가라』고 소리쳐주어 손양은 정영애양 (21) 과 같이 창문을 빠져 나와 불길이 없는 남쪽으로 상을 붙들고 게걸음을 해갔다. 그러나 곧 불길이 밀어닥쳤다. 확확 불길이 다가왔다. 더 견딜 수도 없었다. 뛰어내리지 않으면 타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정양이 먼저 5층에서 펄쩍 뛰어 아래로 떨어졌다. 떨어진 정양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불길은 몰려오고 먼저 뛰어내린 사람은 죽고 머리가 「멍」 해진 것 같았는데 아찔하는 순간 몸이 공중에 뜬 것처럼 느껴지고는 『아무것도 몰랐다』 는 것이다.
손양은 병원에서 깨어나서 첫 마디가 『내가 살아있습니까』 였다는 것을 뒷날 의사에게 서 물었다고 했다. 기적에 가깝도록 별다른 상처가 없었단다.
살아서 직장에 돌아오자 동료들이 손양에게 「서커스·걸」 이란 별명을 붙여 주었다는 것이다.
『요즘도 가끔 떨어지는 꿈을 꿉니다. 아래서 「네트」 로 건져주는 꿈이지만, 식은 땀이 쭉 흐릅니다.』
이 사고 때 다친 동료는 모두 40명, 이중 38명은 완쾌했지만 아직도 고간희 (22), 금정연언니 (21)가 입원해 있는데 5층에서 「다이빙」 한 사람치고 상처없이 깨끗하게 회복된 사람은 손양 뿐이다.
동수여고 때 단거리와 수영선수로 활약했던 것이 「다이빙」에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다는 손양은 두 언니 몸이 하루 빨리 퇴원하게 되기를 빈다며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손양은 부산 성남국민학교 교감인 계영저씨(48세)의 6남매의 맏딸. 66년에 동간여고를 나와 12월에 부산체신청의 타자수로 취직했다가 67년11월에 시의 전화국으로 옮겼었다.
다행히 샅아난 것으로 보아 『복 많은 한해였다』 면서 열『열심히 일해서 삶의 보람을 찾아야겠다』 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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