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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서정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눈(설)은 푸근한 날에 내리는 것이 정취가 있다. 쌀쌀한 날씨에 내리는 눈은 땅위에 쌓여도 바람이 불면 재처럼 날아가 버린다. 기온이 영도에 가까울때 내리는 눈은 표면이 녹아붙어, 눈조각은 사뭇 커다래진다. 이런 눈을 함박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내리는 함박눈은 아무리 큰조각이라도 직경3센티를 넘기기 힘든다. 그러나 북미산악지대에 내리는 함박눈은 어른의 손바닥만하다. 직경이 10센티는 된다. 「캐나다」지방엔 함박눈을 지탱못해 그 꼿꼿한 전나무가지가 휘어있는 광경을 보게된다. 「유럽」에서 함박눈이 자주 내리는 곳은 소련북부와 「폴란드」이다. 북미에서는 서부의 산악지대, 오대호, 대서양안, 「그린란드」 그러나 호주와 「아프리카」에는 고산에만 「캡」을 쓴듯이 흰눈이 덮인다.
「아시아」대륙에서 눈이 많은 지방은 대륙의 변방이다. 내륙지방엔 습한 기류가 적어 눈이 내리긴 내려도 보잘것 없다. 우리나라는 눈이 적은편은 아니다. 「좌전」에서 말하는 대설지구에는 족히 든다. 좌전은 적설량이 평지에 척(30센티)만 쌓이는 곳이면 대설이라고 일렀다.
한국의 평균초설시기는 제일 이른곳이 함남삼수지방이다. 이곳은 갑산과 함께 10월7일께면 눈발이 펄펄 날린다. 중강진도 역시 10월의 초설지역이다. 그러나 제주도에 이르면 12월하순께나 눈을 볼수있다. 그것도 적설은 아니고 진눈깨비가 오락가락하다가는 마는 것이다.
그나마 눈이온 해의 귤맛은 한곁 달다는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금년도 제주도에 눈이 왔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하긴 서울의 평균초설일은 11월18인데 오늘 12월14일의 초설은 연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초설지에 내리는 눈은 행인의 어깨위에서나 정취를 돋울지, 그렇지 않고는 금방 흙탕물이 되어 버린다. 「아스팔트」위에 내리는 눈은 흑설(?)처럼 볼품없이 질퍽해지며, 자동차라도 사납게 달리면 행인들은 뒷걸음질을 쳐야 하는것이다.
그렇다고 서울에 오는 눈이 반갑지 않을리는 없다. 이 회색의 「콘크리트·정글」에 자연의 서정시가 그래도 잊지않고 하늘하늘 백설의 모습으로 내리는 것은 여간한 축복감이 아니다. 「개스」냄새, 소음, 살벌한 비정속에 하나의 역설처럼, 꿈처럼, 환상처럼, 눈이 내리는것은 자연의 변함없는 은총인가. 「킬리만자로」의 눈을 바라보는 「헤밍웨이」의 심경처럼 그래도 희망이, 의지가, 그리고 인생의 기쁨이 충만해 있는 하늘의 편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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