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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극복하겠다는 진보의 반성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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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기자

16일 오후 3시30분 서울 구로구 구로구민회관에 모인 ‘골수 진보’들이 반성문을 채택했다. 강당에 앉은 진보정의당 대의원 260명 중 171명이 ‘대국민약속 7개항’이라는 결의문에 찬성표를 던졌다. 당 대회 의장을 맡은 조승수 전 의원이 “(찬성표만으로 의결정족수를 넘겨) 반대 의견 확인 없이 가결을 선포한다”고 방망이를 두드리자 회의장에선 박수가 나왔다. “북한을 비판할 땐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등의 질문엔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한 반성문은 3항에서 “한반도의 위기를 타개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북한 대목을 담았다. “미국과 한국 정부의 대북 인식과 정책의 교정을 요구하며 대화를 강력히 촉구한다”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도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에 역행하는 태도는 단호히 비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비핵화와 인권 실현은 한반도 전역에서 예외 없이 관철되어야 할 지상과제”라며 북한으로 영역을 확장시켰다. “분단과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고 경제성장을 이룬 세대의 헌신을 잊지 않겠다”는 구절도 담았다. 이날 진보정의당은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지만 애국가도 제창하며 국민의례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간 대한민국 진보는 ‘외눈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남한과 북한을 보는 눈에서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는 질타에 대해 답을 회피했다. 전 세계의 진보는 핵을 반대한다. 그렇다면 세 차례에 걸친 북한의 핵실험과 이명박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 중 어느 게 더 ‘핵 없는 세상’에 치명적인가. 진보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군내 차별에 반대한다. 그렇다면 북한에 존재하는 정치범 수용소와 종교 탄압은 왜 거론치 않을까.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에는 이미 ‘진보 피로증’이 퍼져 있다. ‘진보=북한 옹호’라는 인식이 바닥에 깔려 있으니 북한의 협박과 벼랑 끝 전술이 재연되는 순간 진보의 목소리는 다른 영역에서도 힘을 잃는다. 진보정의당이 이런 말 없는 다수의 정서를 감지한 것 같다. 진보의 존재 이유가 소외된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있다면 남한만 아니라 북한의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도 최소한 시시비비는 가려주는 게 진보의 필요 조건이다. 북한을 바꾸려면 대화가 필요하고 그 상대는 불가피하게 현 북한 정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 체제가 인민을 존중하고 인민을 먹여살리는 것은 아니다. 이런 구분을 명쾌히 보여주지 못하면 진보는 종북이라는 굴레를 깨기 어렵다. 진보정의당의 반성문이 이 같은 상식에 기반한 변화를 담았는지의 판단은 앞으로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