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국정원 수사 끝내 대형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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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하루 전에 공소사실이 통째로 외부에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원세훈(62) 전 국정원장의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서다. 특히 원 전 원장에 대한 처벌 방향과 수위를 놓고 법무부·검찰의 내부 갈등이 불거진 가운데 이번 유출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검찰의 충격은 어느 때보다 강하다.

 14일 오전 8시30분 채동욱 검찰총장은 출근하자마자 길태기 대검 차장과 송찬엽 대검 공안부장을 8층 집무실로 불러 긴급회의를 했다. 오후 2시로 예정된 국정원 정치·선거 개입 의혹 사건의 수사 결과 발표 내용이 한 언론에 유출된 것과 관련해서다. 채 총장은 “전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국정원 의혹 사건 수사 결과 발표가 임박한 시점에서 심각한 사태가 발생했다”며 “누가 자료를 유출했는지 신속히 밝혀내라”고 대검 감찰본부에 특별감찰을 지시했다. 대검 감찰본부는 수사팀·대검·법무무를 포함한 검찰 내부는 물론, 청와대·국정원 등 검찰 외부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채 총장은 특히 “수사 과정에서 수사기밀 누설이나 피의사실 공표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밝혔다.

 검찰 안팎에선 유출 사건이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채 총장은 취임 후 원래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에 배당된 이 사건을 특별수사팀을 발족해 전담시켰다. 정치적 고려 없이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취지였다. 특수부 출신 윤석열 여주지청장을 팀장으로 특수·공안·첨단수사 분야의 베테랑 검사들로 수사팀을 꾸렸다. 한 달 이상 수사한 뒤 수사팀은 원 전 원장에게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함께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는 의견을 수뇌부에 보고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검찰 내부의 갈등이 시작됐다. 공안통인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선거법 적용에 난색을 표하며 보강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이후 수사팀 일각에서 혐의사실과 처리 방침이 흘러나왔다. 검찰 수뇌부에 대한 수사팀의 불만이 언론에 여과 없이 보도되면서 “수사팀에서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 같은 갈등은 정치권의 대립으로 번졌다. 민주통합당은 수사외압 의혹이 제기된 황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사퇴 거부 시 탄핵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공안통인 한 부장검사는 “선거법은 십수 년을 전문으로 한 검사들도 적용이 어려워 신중하게 접근한다”며 “합동수사팀을 구성하기보다는 공안 전문가들에게 맡겨 정면승부하는 게 맞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처리 방침이 조율되기도 전에 검찰의 내부 갈등이 부각돼 검찰 안팎의 불신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을 둘러싼 갈등은 국정원법과 선거법을 모두 적용하되 불구속 기소하는 절충안으로 일단 봉합되는 듯했다. 그런데 58일간의 수사 결과 발표 직전 공소사실이 그대로 유출되는 대형 사고가 터진 것이다. 검찰 조직은 지난해 한상대 전 총장의 사퇴를 불러온 ‘검란(檢亂)’ 사태 이후 흉흉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검사 출신인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건은 전직 국정원장이 연루된 데다 내부 갈등까지 불거져 보안이 매우 중요했는데 피의사실이 미리 새나왔다”며 “철저히 규명해야 할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가영·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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