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영하」속의 살림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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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자 마음도 급해졌다. 시어머니는 보름전부터 겨우살이 준비를 서두르셨지만 시집살이2년째 접어든 나는 날씨가 따뜻하니 실감이 나지않아 아무런 준비가 되지않았었다. 김장은 며칠후에 담가도 되겠지만 고추니 젓갈이니 하는 것은 먼저 사놓아야겠기에 일요일을 이용해서 장을 보러나섰다. 관상대에서는 9일부터 추워지겠다고 예보했지만 관상대예보를 잘 믿지않는 습성이 어느결에 붙어버렸는지 추위가 닥쳐서야 서두르게됐다. 남편과 딸의 내의도 문제지만 시부모와 시동생의 내복엔 더욱 선경을 써야했다.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겠지만 어떻게하면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수 있을것인지 골치가 아파진다.
작년까진 시어머니가 가계를 맡아보셨지만 올부터는 형편이 달라졌다.
남편의 월급이 얼마되지 않는데다 가족수는 많고 물가는 차츰 올라가니 걱정이 되지않을 수 없다. 보름때 같으면 밤늦게 거나하게 취해돌아오던 아빠가 토요일에는 퇴근하기 무섭게 들어오면서 밖에 내놓은 화분을 걱정했다. 일요일에도 대낮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안해 은근히 웃음이 나왔다. 저녁때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겨울을 맞는 나의 걱정거리를 털어놓았다. 시집살이가 몇 년씩 된 친구들은 아무걱정 말라고 안심시키고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이 결혼생활의 진미이며 이런 기회마다 머리를 잘 써서 알뜰한 살림꾼이란 칭찬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오히려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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