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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중앙시평

남북 모두 '황제의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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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마치 냉전해체 후의 분위기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기대 섞인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남북회담이 무산되자 다시 의견이 분분해지고 있다.

 보수적인 인사는 예상했던 대로라는 반응이다. 단테의 『신곡』을 연상시키는 현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는 지옥 입구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이 문에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북한의 대화가 미·중 정상회담, 한·중 정상회담 등의 외교적 압박을 피하기 위한 ‘술수’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애초부터 희망을 버렸어야 했다는 것이다.

 남북 장관급회담 장소인 서울은 분명 지옥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반응을 그냥 흘려버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진정성을 믿기 어려운 북한의 행동 패턴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진보적인 인사는 ‘우리가 무리한 주장’을 했다는 반응이다. 이번에 ‘악마에게도 동정을 보낼 필요가 있었는데’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신뢰와 원칙의 이름하에 북한을 계속 악마로 몰아붙이는 ‘악마화의 트랩’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40여 년 전 롤링 스톤스가 부른 노래 ‘악마에게 동정을’이란 노래를 상기시키는 반응이다. 북한은 괴테의 파우스트 박사처럼 ‘좋은 일을 하려 하지만, 결국에는 죄악을 저지르고 마는’ 트랩에 빠져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가 너무 무리하게 밀어붙여 결국 ‘나쁜 짓’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도적 인사는 ‘언제든지 있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반응이다. 이솝의 ‘당나귀와 개구리’의 우화를 오늘의 남북 현실로 빗대고 있다. 회담 무산은 마치 진흙탕에 빠져 일어나지 못하며 우는 소리를 내는 당나귀의 모습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진흙탕에 사는 개구리가 말했다는 것이다. “잠깐 동안 넘어져 그렇게 울어대면 오랫동안 이곳에 사는 우리는 어떻게 하란 말이야”라고. 한마디로 남북관계에서 긴장과 화해는 동전의 양면적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희일비할 필요 없이 계속 관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남북관계는 보수, 진보, 중도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어려운 과제다. 회담 무산으로 의견이 다시 분분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다 심각한 문제는 제 각각의 사고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는 우리 모두의 ‘무지’인지도 모른다. 모두들 ‘철학적 진리’를 말하지만 자신들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기싸움 속에 북한의 변덕스러운 움직임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었던 우리의 무지이기도 하고, 원칙과 신뢰의 대북정책이 높은 지지를 누리고 있는 우리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북한의 무지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남북 장관급회담에 대한 청와대의 반색 분위기는 이해할 만했다. 선(先)당국 간 대화를 원칙으로 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회담이 청와대가 믿고 싶듯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이끌어 낸 ‘예정된’ 사건이라고 보기는 어렵게 되어버렸다. 보다 깊은 뿌리의 원인을 박근혜정부는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북한의 모습 또한 다를 바 없다. 북한은 우리를 제대로 알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핵과 미사일로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려 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결의는 더욱 다져졌고, 대화공세로 우리를 분열시키려 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더욱 단결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어느 국가도 핵과 미사일과 같은 무력의 껍데기만으로 생존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소멸된 소련이나 공룡의 이치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북한은 앞으로 생존을 위해 변화를 계속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남북대치 상태로는 경제회복도 비핵화의 길도 멀어져 갈 뿐이다. 어떻게 해서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당국 간 회담은 이런 변화를 활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다시 살려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은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 ‘황제의 새 옷’으로 갈아입을 필요가 있다. 기존의 삐뚤어진 시각에 빠져 서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무지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황제의 알몸 모습이 보다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긴장과 대화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고립된 북한을 이끌어 내는 우리의 전략적 접근이 아쉬운 시점이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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