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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82> 용산 참사의 재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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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해 8월 1일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을 서울 신문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진철훈 전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 이사장, 양갑 전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 초빙연구위원과 같이 봤다. 극장을 빠져나오는데 발걸음은 무거웠다. 근처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앞에 앉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우리가 그때처럼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면 용산 참사가 일어났을까요.”

 내가 민선 서울시장일 때 진 전 이사장은 도시계획국장, 양 전 연구위원은 주택국장이었다. 우리 셋은 용산 참사를 재구성했다. 꽤 오랜 시간 토론이 이어졌고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라면 참사를 막을 세 번의 기회를 만들었을 겁니다.”

 나는 서울시 달동네 불량주택 재개발을 추진하며 세입자를 위한 임대 아파트 제도를 만들었다. 문제가 된 용산 4구역 재개발 사업은 달랐다.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이었고 상가 세입자에 대한 대책이 부족했다. 임대 아파트 정책처럼 그들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만들어야 했다.

 두 번째로 ‘시민과의 토요데이트’가 있다. 시장과 민원인이 직접 만나 대화로 해결할 기회를 활용했을 것이다. 시정 책임자가 직접 나서 그들과 얼굴을 맞대고 얘기했다면 서로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두 단계에서 해결이 안 됐다 해도 세 번째 기회가 남아 있다. 경찰특공대원을 실은 컨테이너를 크레인으로 끌어올려 상가 옥상에 투입하는 일은 엄청난 수준의 공권력 행사다. 상가 건물 위에서 농성하고 있는 철거민을 진압하는 것이 그 정도로 위급하고 중대한 일이었을까. 아니다. 물리적 경찰 강제력 행사의 전제가 되는 ‘경찰 비례의 원칙(공공질서에 심각한 위해가 있을 때 가능한 한 최소의 경찰권을 투입)’에 어긋난다. 이처럼 중대한 경찰 강제력의 투입은 서울경찰청장이 당연히 시장에게 사전 보고를 해야 하는 사안이다. 나에게 보고가 들어왔다면 즉각 반대했을 것이다.

 용산 참사를 복기하면 할수록 안타까움은 더 커졌다. 불통이 부른 참극이었다.

 행정의 9할은 대화와 소통이다. 소통에도 요령이 있다. 나는 나름대로 소통에는 세 단계가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터득했다. 첫째는 경청이다. 서울시장 시절 토요데이트에서 민원인들을 만나면 처음 30분간은 주의 깊게 들었다. 20분 만에 끝나면 “더 할 얘기가 없느냐”고 물었다. 아무리 억울한 일이라도 30분을 넘기진 않았다. 관료주의에 물든 공무원은 책임부터 피하고 보는 면책 우선주의에 빠진다. 국민의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말 허리를 끊고는 안 되는 이유부터 역설하곤 한다. 민원인의 화를 돋우고 해결할 길은 멀어진다. 마음 놓고 얘기할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민원인의 마음은 절반쯤은 풀린다.

 그 다음은 역지사지(易地思之)와 공감이다. 소리만 듣는 게 아니라 마음을 듣는 것이다. 행정 실무자가 경직되게 법적 해석을 내리는 바람에 갈등이 생겼다면 책임은 시장이 지는 조건으로 문제를 풀었다. 시민에게 유리하도록 융통성을 가지고 접근했다. 물론 들어주기 어려운 무리한 요구나 ‘떼 쓰기’ 성격의 민원도 있다. 그럼 나와 민원심사위원들이 설득에 나섰다.

 설득하고 또 설득당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 대안을 구상하고 정책으로 만드는 일이 소통의 마지막 단계다.

 소통은 안 하고 일만 해선 안 된다. 소통비서관을 만든다고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통은 정책 책임자 스스로 해야만 한다. 소통만 하고 행동을 안 하는 것은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 시민과의 토요데이트를 통해 행정의 요체는 경청과 공감, 대안과 실천에 있다는 점을 터득하게 됐다.

정리=조현숙 기자

이야기 속 사건 - 용산 참사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는 철거민이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남일당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자 2009년 1월 20일 경찰은 강제 진압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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