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등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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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을 달빛이 시리도록 밝게 비치는 밤이면 방안의 등불은 한층더 따뜻하고 아늑하게 느껴온다.
지금은 동화가친의 계절. 깊은 밤 은은히 비치는 등불은 어지럽고 피곤한 마음과 몸을 풀어준다.
방안의 불빛이 너무 밝거나 또는 직사 조명이어서는 안된다. 해가 지고 방마다 불을 밝히고 온 가족이 부드러운 불빛아래 모일때 나는 소중한 역할을 한 것처럼 선량하고 행복해진다.
이처럼 등불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사실 내 눈 탓이다.
외국유학이란 아무리 갖추어진 상황이라 할지라도 누구에게나 어렵고 고생스런 시절인 모양이다.
조명이 좋지 못한 환경아래서 나대로 힘에 겹도록 공부하다 시력이 나빠졌다.
처음 눈의 피로를 덜기 위한 실용적인 면에서 등율 구해오다가 이젠 미적인 데까지 신경을 쓰게됐다.
6년전 해외 공연으로 「마닐라」에 들렀을 때다. 하얀조개껍질을 이어만든 갸름한 등피가 싸면서도 마음에 들어 소중히 갖고 오다 김포공항에 와서 깨뜨리고 말았다. 하도 애석하고 아깝게 생각하자 이듬해 그이가 가는 길에 그 등피를 다시 사왔다.
지금도 책상앞에 매달아두어 이색적인 아름다음과 은은한 불빛을 비쳐주고 있다. 그리고 안방 문갑 위에 둔 유리 「램프」도 역시 그이가 여행에서 구해온 「버마」의 식탁용 「램프」 다. 이것은 전기용이 아닌 초를 넣고 심지에 불을 붙여 쓴다.
대형 유리 「컵」 모양 위에 「나일론」실을 엮은 망을 씌우고 초칠을 한 단순한 모양이다.
응접실에 있는 장식용 등피는 집에있던 흰비단을 씌웠더니 훨씬 품위도 있고 불빛도 순해졌다.
우리나라의 창호지를 씌운 갓이나 풍속도를 그린 등피는 아마 어느나라 것보다 일품일것이다.
우리집 서재와 「피아노」가있는 방은 이러한 운치보다 눈을 위해 실용적인 도안용등을 달았다.
간접조명으로 빚이 반사되어 안정감을주고 책을보거나 「피아노」를 칠 때 쉽사리 피곤감을 느끼게하지 않는다.
밤의 불빛과함께 한낮의 햇볕도 문제다. 주택양식도 많이 변해 외국주택은 거의 직사광선을 받지않게 되었다한다.
얼마전 천구 집을 방문했을 때 오래된 빈양옥인데 창문경사에 신경을 써 집안이 어둡지도 않고 아늑하기 이를데 없었다.
사실 우리 집은 직사광선이 바로 쬐어 빤빤하고 도시의 시끄러운 소음이 그대로 들이닥치는 감이난다.
밤의 광선에는 굉장히 신경을 쓰지만 대낮 직사광선은 약간 무관심했다고 여겨져 아늑한 분위기를 위해 궁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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