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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상여 줄줄 꿰는 파란 눈 영국인 교수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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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제임스 그레이슨 교수가 8일 경북 경산의 상엿집 앞에서 상여와 요여를 설명하고 있다.

구레나룻 허연 벽안의 영국인이 허리를 굽혀 상엿집(또는 곳집) 안으로 들어갔다. 300년쯤 된, 누구나 접근을 꺼리는 건물이다. 그리고는 전통 상례에서 혼백과 신주를 옮기는 작은 가마인 요여(腰輿)를 가리키며 그림을 잘 보라고 했다. 요여의 양쪽에는 십자가가, 뒤쪽에는 연꽃이 그려져 있었다. 제임스 그레이슨(69) 영국 셰필드대 동아시아학과 명예교수의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눈썰미는 예사롭지 않았다.

 “경산 상엿집에 보관 중인 20개 요여에는 대부분 연꽃 그림이 있습니다. 한 요여에 불교의 상징인 연꽃과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가 동시에 등장하는 건 이게 유일해요.”

 그레이슨 교수는 3년 전 한국에 왔을 때 제자인 조원경(56) 하양 감리교회 목사가 경산 무학산에 복원한 상엿집(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66호)과 요여·제구 등 관련 자료를 처음 접했다. “요여는 고인의 영혼과 관련된 혼귀, 신주 등을 싣는 작은 가마로 발인 때 상여보다 앞서 나가죠.” 전통 상례에 대해선 한국의 웬만한 전문가보다 더 많이 아는 그다. 동아시아의 종교 전파에 천착해 온 그레이슨 교수는 요여의 그림을 처음 본 순간 든 의문 때문에 이번에 한 달 동안 다시 현장 연구에 나선 참이다. 출국에 앞서 8일 경산 국학연구소에서 ‘한국의 추도예배’를 주제로 특강도 했다.

 그는 “개신교 신자들이 제삿날에 맞춰 추도예배를 올리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유교적 가치관을 지닌 한국에 개신교가 전래되면서 생긴 독특한 양식”이라고 설명했다. 감리교는 ‘부모님 기일 기념예배’로 부른다. 그것도 선교사나 목사가 아닌 평신도가 먼저 추도예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추도예배는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개신교가 성장하는 배경이 됐다는 설명이다.

 그레이슨 교수는 그 연장선에서 요여의 십자가 그림을 주목했다. 요여가 발견된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를 답사한 결과 100년 된 교회와 80년 된 천주교의 공소, 절, 서당이 공존하는 마을이었다. 그는 통계청도 방문, 2015년 인구 센서스 때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종교 관련 항목을 꼭 넣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레이슨 교수는 대학 3학년 때인 1965년 한국에서 한 달간 봉사 하며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71년에 선교사로 다시 방한, 경북대·계명대에서 각각 4년간 인류학·신학 등을 가르쳤다. 김해 김씨에 정현(正玄)이라는 한국 이름도 얻었다. 영국으로 돌아가서는 한국인 아들 둘을 입양해 키우고 22년간 셰필드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쳤다. 대구지역 문화재 보존에 관심이 많아 2010년에는 김범일 대구시장에게 대구읍성을 보존해 달라는 편지를 영국에서 보내기도 했다.

경산=글·사진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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