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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미달 믿어주는 법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7년동안 3대와 4대에걸쳐 사법부를 이끌어온 조진만대법원장(65)이 19일 정년퇴직했다.
각급법원급이상 간부와 재경법관, 3급이상의 일반직이 참석한 이날퇴임식에서조대법원장은 『당초에 좌표로내걸었던 국민이 믿어주는법원, 옳은일을감행하는법원등의실현은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조대법원장은 이목표를 향해 힘을기울여 왔으나 자신의역량부족과 인원·시설·예산면에서 제약을 받고 복잡한사건의 폭주와 비현대적사무처리절차등으로 당초의 목표를 이룩할수없었다고 돌이켜보았다.
23년3월 경성법학전문을졸업 4년후 24세의약관으로 해주지법판사에임명되면서 사법부에 투신한 조대법원장은 51년, 10개월동안 법무장관에 재직했을뿐 23년동안의 법관생활과 16년의 변호사생활에 힘써왔다.
조대법원장이 남긴 사법행정의 개선책중 가장 눈에 띄는것은 모든 재판기록의 한글전용화다.
61년7윌 5·16혁명후 제3대대법원장으로 취임한 조대법원장은 난해한 법률용어등 판결문과 재판기록을 한글로 쓸것을 지시, 정부의 한글전용화 운동에 앞장섰다.
법해석의 통일을 위한 판례체계의 확립과 1심에 항소부를 두어 고법의 사건폭주를 완화한 번급제도의 변혁, 검사와 변호사를 대등한 위치로 끌어올린 당사자주의로의형사소송법개정등도 그가남긴 사법제도의 개선으로 꼽힌다.
조대법원장의 명석한 머리와 해박한 법률지식은 조야법조인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대법원판례체계를 모두 알고있기때문에 대법원판사들이 법률해석에 의문이 있을때는 사건기록을 갖고 대법원장실로 들어가 법률해석의 자문을 받고 나오는 모습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의 이같은 업적에비해 법관인사운영등 법원행정면에서는 너무나보수적이고 현상유지에 그쳤다는 것이 법조계의 공통된 이야기. 법관들이 연이어 사표를 내어도 결원보충에 부성의했고 폭주하는 업무량을 해소하기위한 적극적인 행정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는 점등이 구체적인 예로 지적되고있다.
한 대법원판사는 그를 「사법자제주의」의 법철학을 갖고있는 법조인이라고 풀이했다.
그가 7년동안이나 사법부를 이끌어오면서도 법률의 위헌판결하나 없었다는것은 사법자제주의의 법철학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명.
어떤 법률이 헌법위반이라고 판단되더라도 판결이유에 이를 밝히지않고 결과적으로 같은효과의 판결만을 내려 입법부나 행정부에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이 덜 나서 법관이되어 평온, 평범한 인생살이를 하게 한곳이 법원입니다. 잔뼈가 굵어진 내집입니다. 본인은 물러간뒤에도 법원근처에서방황, 소요할것입니다.』-조대법원장은 23년의 재조법조인생활을 끝내는자리에서 앞으로도 재야법조인 생활을 통해 사법부발전에 이바지할 뜻을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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