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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취재35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1928년 「암스테르담」의 「올림픽」대회에 육상선수로 참가한후 「로이터」통신에 입사하여 35년간 「올림픽」경기를 취재하고 「멕시코」대회 취재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할 것이라는 「로이터」통신의 「버논·모간」체육부장은 지난날의 「올림픽」을 다음과갈이 회상했다.
지난40년간의 선수 및 기자생활을 회고할때 내머리속에는 주마등처럼 많은 인물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5년간의 선수생활을 끝내고 「로이터」통신에 입사했을때 나는 1924년과 1928년 두번이나 「올림픽」에서 영웅이 되었던 「파브·누르미」선수를 동경해 마지않았다.

<선수로 두차례출전>
그때나 지금도역시 「올림픽」경기의 영웅은 「마라톤」의 우승자가 되기 마련이고 이런의미에서 「체코」의 「자토펙」이나 한국의 손기정등은 「올림픽」 역사에 찬연히 남을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만일 「누르미」선수가 오늘 「멕시코」에서 젊은이가 되어 경기장에 나타나면 그는 과거에 출전했던 모든 종목에서 우승할 것을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시대는 많이 변했고 선수들은 기록경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920년대의 「올림픽」은 상대방 선수들을 이기는데 목적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신기록 수립으로」 전환되었다.

<맨머리에 「월계관」>
내가 현역선수였을때는 오늘날과는 사정이 달라 선수들은 호화로운 「제트」기 여행도 할 수 없었고 기차여행이나 해상여행으로 많이 시달렸다. 몸에 맞지않는 「유니폼」을 입는일이 한두번이 아닐정도로 선수들에대한 대우는 형편없었는데 현재 「올림픽」선수들은 많은 젊은이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의 「올림픽」취재중 가장 인상깊었던 일중의 하나는 1936년 「베를린」대회에서 무명의 손기정선수가 예상을 뒤엎고 영국의 「어니·하퍼」선수를 앞질러 「마라톤」에 우승했을때였다.
우승후보자로 지목되던 「하퍼」선수는 은 「메달」을 타는데 그쳤지만 머리를 빡빡 깎았던 손선수는 영예의 월계관을 차지했던 것이다.

<인문기관차자토펙>
1948년 「런던」대회에서는 「벨기에」 육상선수 「에티엔·캘리」가 영웅의 칭호를 받았다.
1952년 「헬싱키」 대회에서는 공산권 「체코」의 「자토펙」이 단연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자토펙」은 5천미터와 1만미터에서 우승하고 「마라톤」에서도 손기정선수의 기록을 깨뜨리고 1위로 입상,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영원의 인물 아베베>
1960년 「로마·올림픽」과 1964년 동경「올림픽」에서 두 번 계속 「마라톤」에 우승, 찬연한 업적을 기록한 「이디오피아」의 「비킬라·아베베」선수는 세계 「스포츠·팬」들의 머리속에서 영원히 잊어버릴수없는 인물이 되었다. 나의 「올림픽」 40년을 회고하건대 1936년 「베를린」대회때의 손기정, 1952년 「헬싱키」대회때 『인간기관차』라는 별명을 얻은 「자토펙」, 「로마」와 동경대회때의 「아베베」등이 가장 훌륭한 선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베베」선수는 이번 「멕시코」대회에도 참가, 3연패를 노리고 있어 많은 체육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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