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미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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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빠가 꽤 안으시느냐고 칭얼대는 두 꼬마를 억지로 재우고 나면 그때부터 화가 난다.
아침 일찍부터 아빠 시중, 두 개구쟁이 뒤치다꺼리 청소 빨래 등등 표적 없는 일들이 끝이 없다.
그래도 저녁나절이 되면 오늘은 설마하는 기대를 걸고 머릿속에 메모해둔 찬거리를 장만한다. 아이들은 따로 떼어 만들어주고 싶지만 그러면 아빠 몫이 적을 테고 에따 모르겠다-고춧가루를 듬뿍 친다.
아가들이 먹으려고 들여다보고는 혼비백산 도망한다. 가슴이 아프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니-아빠가 진지 많이 잡숫고 건강하셔야 되지 않겠니-우리도 좀 여유가 생기면 남부럽지 않게 길러주마. 마음속으로 달래본다.
그러나 그런 성의도 아랑곳없이 아빠는 자정이 가까와야 들어와서는 냉수로 배를 채우고 금세 세상 모르고 잠들고 만다.
그때서야 배고픈 생각에 수저를 들어보지만 밥맛이 날 리가 없다. 화가 나서 아빠 몫으로 특별히 해논 반찬을 듬뿍 떠서 입에 가져가 보지만 아기들이 걸리고 내일 아침 아빠 밥상에 놓을 생각에 먹을 수가 없다. 아빠가 미우면서도 무관심 할 수각 없으니 난 아마 바보인가보다. <한희열·서울 서대무구 안산동83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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