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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가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가을 강변에
백로 내려앉아
흰서리 내리듯
살포시 내려 앉아
마음 한가함인가
얼마동안 머무르며
강변 모래위에
홀로 서 있네.
(백로하추수 고비여추상 심휴차미거 독립소주방)
가을 풍경을 읊조리는 이백의 시는 한폭 묵서보는 느낌이다. 요즈음은 북적거리는 도심을 분주히 걷다보면 두팔을 벌리고싶다. 푸르고 깨끗한 가을이 하늘에서 굽어 보고 있는 것이다.
도회지에 붇혀 사노라면 계절은 바람처럼 왔다간, 바람처럼지나가 버린다. 뽀얗게 먼지 붇은 가로수 잎사귀로는 그 오가는 계절의 사신을 받을수가 없다.
하루 하루는 서류의 틈바구니에서, 때묻은 달력장에서 째깍째깍 지나가 버린다.
전원의 가을풍경을 노래한 시조로는 격조높은 주옥편들이 얼마든지 있다.
『들마다 늦은 가을 찬바람이 음직이네. 벼이삭 수수이삭 으슬으슬 속삭이고 발머리 해그림자도 바쁜 듯이 가누나.』
가람 이병기옹의 시조이다. 지금은 전북 초당에 머무르는 이옹의 병고는 그후 소식이 없다.
아직「그르몽」의 시를 읊기엔 이른 계절인가.
『시몬. 나뭇잎세 저버린 숲으로 가자. 낙옆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그대는 낙옆 밟는 소리가 좋지않은가.』
도시의 시정인들에게 1년중 이절감이제일 선명할때는 언제일까. 문득 선들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늦더위가 서성대던 9월의 마지막 달력장을 뜯어 낼 때.
그렇지. 그땐 삭풍처럼 귀가 시려운 연탄타령, 물가타령이 서민들의 귓전을 흔들기 시작한다. 오늘은 10월1일. 이제 그런 가을이 시정인의 옷깃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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