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소련군의 「체코」에대한 기습적인 강점은 동서관계에는 물론 미국및 구주제국,그리고 「나토」전략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체코」에 대한 소련군의 무장침입은 공산권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는 1958년 또는1962연에 소련이「베를린」을 위협했던것과 같은 세력권확장의 시도와는 다르다.
이러한 의미에서 「체코」사태는 세계정세에 기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련군의「체코」강점은 가장 악랄한 「파워·폴리틱스」의 전형일뿐만 아니라,구라파에 있어서의 동서군사력의 균형을 급격하게 깨뜨렸으므로 자유진영측에서는 중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체코」사태로 즉시 동서간의 냉열전이 재연되리라는 것은 아직 속단할수 없다.
그러나 소련이 전세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약육강식의 공공연한 침략을 감행하였다는것은 종래의 소련에대한 평가를 재고하게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동서관계는 미소협조외교 또는 해빙으로 요약되며 여기에는 서방측의 너무나 안의한 사고가 있었다.
「체코」사태와 더불어 서방측은 표맥부동의「약누스」적인 소련 대외정책의 음흉함을 새삼스럽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특히 소련군의「체코」에의 대거 진주는 구주전략정세의변화를 가져왔음을 직시해야한다. 「체코」침입이전의 「바르샤바」조약군은 97만명이었으나 현재는「체코」침략군 약60여만을 비롯해서 전체병력이 1백35만명으로 증가하였다고 한다.
「나토」군 90여만과 비교하면 현격한 병력의 차이가있다.
특히 「체코」영내의 소련군의 대병력주둔은 서독의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있다.
뿐만아니라 소련의 「체코」에 대한 전격적인 작전은「나토」의 방위개념을 일변시켰다.지금까지「나토」는 소련이 전면침략을 하더라도「조기경보」의 체제가 있으므로 시간여유 (약10일간)를 얻어 그동안에 미국 같은데서의「대공수」를 상정하고 있었다.
「체코」에 대한 소련군의 전격적인 기습은 미국이 상시 적당한 규모의 병력을 구주에 주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우쳐주고 있다.
그에 따라 9월4일 미국은 서독주둔미군의 철수계획(「로테이션」계획)을 중지할것을 발표하였다.
미국은 「맥나마라」계획 (작년5월발표)에 마라 약3만5천명을 이미 철수한바 있고,현재 서독주재미군은 19만6천명으로 점차 감축일로에 있었으나 그것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병력의 균혐이 깨졌을때의 위험성은 충분히내다볼수 있는 것이다.
지난 17일 「쿨리포드」미 국방장관은 다시금 내년초의 「나토」기동연습에 앞서 금년말까지 미군4만을 「유럽」 에 증파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당연한 조치라 할수있다.
또 15일 불란서의「드브래」외상도「나토」에의 잔류를 확언했지만 「나토」의 단결과 강화는 그어느때 보다도 크게 요구된다고 보겠다.
미국 일부에서는 종래「나토」병력을 상징적인 수준까지 삭감해야한다는 주장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체코」사태와 더불어 그와같은 것이 얼마나 위험한 모험인가가 실증된 셈이라 할 것이다.
소련의「체코」침입직후「미소의 사전묵인설」에 관한 의혹의 보도가 없지 않았다.
이는 미 국무성이 강력히 부인 하였지만 구라파 국민들의 불안은 적지 않다.
미국의 「나토」강화조치는 구라파국민의 사기를 앙양하게 될것이다.
미국은 점차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누차에 걸친 대소경고를 비롯해서「나토」의 강화조치와 소련과의 문화교류등을 중지했다.
과거의 역사를 볼때 일련의 대결조치가 강구됨으로써만 소련의 횡포를 막을수 있었다는것을 상기한다면 서방측은 언제나 유환없는 대비에 철저를 기하여야만 할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