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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내 몸은 생로병사를 세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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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서령
오래된 이야기 연구소 대표

초저녁 잠이 많아졌다. 텔레비전을 보다 말고 꾸벅꾸벅 존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면 좀 전에 보던 드라마가 아직도 계속된다. 이건 영락없이 우리 엄마의 동작이다. 만년의 엄마는 아홉 시만 넘으면 텔레비전 앞에서 지금 나처럼 꾸벅꾸벅 졸곤 했다. 그러지 말고 누워서 자라고 권하면 얼른 정색하곤 했다. “안 잤다, 야야. 안 자는 사람을 왜 자꼬 잔다카노?” 어떨 때는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 글쎄 안 잤다캐도!”

 맞다. 졸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집중해야 마땅할 흥미진진한 프로그램 앞에서 내가 졸다니! 비록 자식이더라도 자존심이 상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게 노화(老化)든, 피로(疲勞)든, 해이(解弛)든 스스로 수긍하기도 싫고 남에게 들키는 건 더 싫다.

 졸다 깨어나는 서슬에 괜히 허망하고 화가 나는 쓸쓸한 시간, 그 안으로 떠밀려 들어가면서 보니 내 나이 어느덧 그때의 엄마보다 훨씬 많아졌다. 풀잎 끝에 손가락을 베이듯 마음이 쓰라리다. 겉보기엔 상처 같지도 않지만 눈물이 핑 도는 생채기가 중간중간 장착된 것이 삶이라는 것을 인제 나도 어지간히 알 만해졌다.

 임하의 뒷산에 엄마를 묻은 지 10년이 썩 넘었다. 지금쯤 백골이 진토되어 온전히 지수화풍으로 돌아갔을 엄마를 요즘 되레 더 많이 생각한다. 엄마는 생전에 참 잠이 많았다. 아니 그걸 잠이 많다고 말하는 건 난폭하다. 엄마는 거의 누워서 잠자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엄마는 12대를 봉사하는 큰집 종부, 산업화로 다들 도시로 나가버려 부엌일 거들 일손도 거의 사라진 무렵, 시대는 바뀌어도 봉제사 접빈객의 임무만은 엄연하던 시절이 엄마 인생의 바탕 화면이었다. 낮에는 삼시 세끼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방아찧고 제사 준비를 했고, 밤에는 손님에게 대접할 군입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자다가 깨었을 때 엄마가 곁에 누워 잠자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늘 앉아서 뭔가 분주하게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혼잣손으로 빚고 쑤고 졸이고 담그고 고아내던 그 많은 달콤하고 고소하고 무던하고 슴슴한 것들, 엄마의 잠을 빼앗아 만들어진 그 주전부리들 덕분에 내 어린 날은 늘 흥성하고 풍족했다. 인절미와 송편을 빚고 묵을 쑤고 식혜를 담그고 엿과 조청을 고고 남은 시간으론 바느질에 다듬이질에 인두질까지 마쳐야 했다. 그러니 젊어서는 닭 울기 전에는 도무지 누울 짬이 나지 않았다. 닭이 울어 새벽빛이 희붐해진 이후에는 이미 하루 일과의 시작이니 더구나 누울 틈을 낼 수 없었고!

 나중 전기밥솥과 가스레인지와 세탁기가 부엌 안으로 들어오고 옷을 손으로 지어입는 게 아득한 전설이 돼버린 시절이 오자 할 일을 손에서 놓아버린 엄마는 앉기만 하면 졸았다. 아무 데서나 꾸벅꾸벅 고개를 떨궈 우리끼리 조는 엄마를 손가락질해 가며 웃었다. 엄마는 텔레비전을 퍽이나 좋아했다. 그런데 그 좋은 드라마의 조마조마한 장면을 눈앞에 두고서도 엄마는 졸았다. 조는 것을 지적하면 내가 언제 졸았느냐고 시치미를 떼가면서 졸았다.

 졸고 있어도 엄마가 안방에 버티고 있는 집은 무언지 흥성했다. 고방에 술과 엿과 식혜가 감미롭게 익어가지 않아도, 층층시하 어른들을 모시며 잠을 모조리 반납하던 새댁 시절을 거친 엄마의 몸, 바로 거기서 특유의 훈김이 돌아 집 안 가득 퍼져나갔다.

 조는 엄마를 잃어버린 대신 이제 내가 엄마와 똑같은 방식으로 졸고 있다. 충전된 배터리가 방전되듯 하루치의 에너지가 바닥난 몸이 고개를 아래로 툭툭 떨군다. 딸아이가 조는 나를 보며 깔깔댄다. 무안해진 나는 그런 딸에게 예전 엄마처럼 정색한다. “내가 언제 잤다고 그래!” 어떨 때는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글쎄 안 잤다니까!”

 노동을 애정으로 전환할 줄도 모르면서, 밤잠을 엿과 식혜로 바꾸지도 못한 주제에 속수무책 졸고 있는 나를 어쩌면 좋으냐. 엄마와 나와 딸, 우리는 졸거나 웃으면서 연대한다. 아늑하고 쓸쓸하게 평화와 무상을 재생산한다. 내가 죽은 후 10년쯤 지나면 저기서 깔깔대는 딸도 나처럼 꾸벅꾸벅 졸게 될 게 분명하다. 그러니 딸들이여, 부디 시집가서 딸 하나쯤 낳고 살아라. 까짓것 우리, 출산율이 낮아졌다고 저렇게 울상 짓는 정부 한번 도와줘 버리자!

김서령 오래된 이야기 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