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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리조트 변신 LA 마리나 … 전곡 마리나엔 매점 하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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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경기도 화성시 전곡 마리나에 요트 100여 척이 정박해 있다(왼쪽). 이곳은 해상 정박 시설이 부족해 인근 사유지에 200여 척의 요트가 보관돼 있다. [화성=이경 JTBC VJ, 마리나 델 레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북쪽으로 7㎞ 남짓. 베니스시티 해변 남쪽에 자리 잡은 마리나 델 레이(Marina Del Rey)는 ‘레저 천국’으로 불리는 곳이다. 총면적 32만8000㎡, 축구장 46개 넓이에 요트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이다. 현장엔 4000여 척의 크고 작은 요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열해 있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아내·아들과 이곳을 찾은 헨리 제임스(45)는 “가족들과 요트를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며 “쇼핑도 하고 바닷가재 식사도 즐기면서 주말을 만끽하고 있다”며 웃었다.

 마리나 델 레이가 처음 문을 연 것은 1965년이다. 미국 중산층에 인기를 끌면서 지금은 요트 정박장과 호텔·쇼핑단지·컨벤션센터 등을 갖춘 세계적인 복합 휴양지의 대명사로 불린다. 북쪽 7㎞ 위엔 샌타모니카 해변과 ‘3가 프로미네이드’라는 쇼핑몰·레스토랑 거리가 있다. 동쪽의 링컨가에도 수많은 쇼핑센터가 들어서 있다. 최근엔 러시아 부호들의 ‘메가 요트’(수십만 달러가 넘는 대형·고급 요트) 방문이 늘고 있다.

 지난 2002년부터 정박장 업무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데비 탤벗은 “델 레이에는 모두 21개의 정박장에 4500대의 요트를 계류할 수 있다”며 “개인 요트항으론 두바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라고 자랑했다. 지난해 요트 이용객은 25만여 명, 전체 관광객은 700만여 명에 이른다. 탤벗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잠시 영업실적이 부진했지만 지금은 완연한 회복세에 있다”고 소개했다.

LA 마리나 관광수입만 연간 5억 달러

4000여 척의 요트가 빼곡한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마리나 델 레이’ 전경. [화성=이경 JTBC VJ, 마리나 델 레이]

 경제 창출 효과도 엄청나다. 델 레이는 요트 이용료로만 한 해 500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아파트 임대 등을 통해서도 로스앤젤레스시는 한 해 5000만 달러의 수입이 생긴다. 당국은 700만여 명의 관광객이 대략 5억 달러어치의 지갑을 연다고 분석하고 있다.

 현지 요트 제조업도 휘파람을 불고 있다. 델 레이의 성공은 파워보트와 세일보트·스탠드업 등 미국에 제조 기반을 둔 요트 업체들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관련된 일자리도 수천 개가 넘는다. 탤벗은 “시설 운영과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250여 명, 인근 8800여 명의 주민 중 상당수가 호텔·콘도미니엄·쇼핑센터 등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시는 지난해 1400만 달러를 들여 항만 준설작업을 마무리했다. 대형 보트가 드나들기 쉽도록 항만을 개조한 것이다.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요트 시설도 88개로 늘렸다. 일자리 수요가 늘어나면서 500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신축하고 있다. 무엇보다 콘텐트 개발이 활발하다. 관광객들에게 더 새로운 즐길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얘기다.

창업·일자리 창출에 블루오션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국내에서 운영 또는 개발 중인 마리나는 모두 26곳. 이 가운데 부산에 있는 수영만 요트경기장과 경기도 화성 전곡 마리나, 전남 목포 삼학 마리나 등이 규모에서 손에 꼽힌다. 특히 전곡 마리나는 수도권에 자리 잡아 성장 잠재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3일 기자 일행이 전곡 마리나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육상 계류장이었다. 사유지에 개인 소유의 요트를 보관해 둔 것이다. 쉽게 말해 공영 주차장이 부족해 사유지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전곡마리나의 수용 능력은 200척(육상 87척 포함)에 불과하다.

 화성시 이재봉 해양개발담당 계장은 “정박장이 부족해 100~200척이 사유지를 이용하고 있다”며 “다음 달부터 전곡항 인근 제부도에 300척 규모의 정박장을 마련하는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마리나의 요트 수용 능력은 20%도 되지 않는다. ‘개인소득 3만 달러 레저’라는 별칭답게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요트 인구는 늘어나고 있지만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요트를 제작하는 곳은 전곡 마리나에서 20여 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현대요트 딱 한 곳뿐이다.

 마땅히 즐길거리가 없다는 점은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이날 전곡 마리나를 찾은 권민영(46·서울 서초동)씨는 “달랑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 말고는 음식점이나 휴게시설 등이 너무 부족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곳에 편의시설은 지난주 준공한 클럽하우스 한 곳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입주한 매점 하나 없이 텅 비어 있다.

한국, 시대착오적 행정에 업종 지정도 안돼

 부경대 지삼업(해양스포츠학) 교수는 “정부의 뒷북 행정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며 아쉬워했다. 지 교수는 “2009년까지만 해도 마리나는 정박·보관·수리 시설만 입지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었다”며 “수익시설 등이 들어설 수 없어 민간 투자를 유치할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이후 법이 개정됐지만 2010년 이후 경기가 급락하면서 투자가 미진하다는 지적이다.

 지 교수는 이어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탁상행정에 국내 마리나 산업의 발이 묶여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행 ‘유선 및 도선 사업법’은 요트·보트의 중간 기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이 같아야 한다는 뜻”이라며 “부산에서 출발한 요트가 통영에 손님을 내려놓으면 불법인데 이래선 레저 산업으로 키울 수 없다”고 말했다.

 업종 지정이 안 돼 있는 것도 문제다. ‘마리나 서비스업’의 경우 정부 업종 분류에 포함돼 있지 않다. 현행법으론 관련된 창업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유환익 산업본부장은 “한국에서 마리나 산업은 이제 초기 단계”라며 “특별한 문제가 예상되지 않는 이상 규제를 대폭 개혁하는 네거티브 형태로 법제도를 정비해 창업과 일자리 창출이 활성화되도록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이정엽 기자, 화성=이상재 기자

마리나(Marina) 요트나 보트를 정박·수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항구. 선박 제조와 정비사 고용, 배후의 리조트·쇼핑단지·음식점 조성 등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하는 경제적 효과가 있다. 특히 3면이 바다인 한국에 적합한 업종으로 내수 진작을 거론할 때마다 주요한 성장 산업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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