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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의 세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사람들의 꿈은 언제나 미래로 치달리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토머스·모어」를 비롯해서 옛날부터 아무데도 없는 세계, 「유토피아」를 설계해 보는 버릇이있다.
「유토피아」(Utopia)란 물론『좋은 곳』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무리 미래를 투시해봐도 사람들이 더살기 좋아 질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이제는「유토피아」대신에 「디스토피아」(Dystopia)란 말을 잘쓴다. 『나쁜 곳』이란 뜻을 가진 신조어다.
미래소설을 쓴 「H·G·웰즈」「올더스·헉슬리」,「포스터」,「조지·오웰」등은 모두 이런「디스토피아」를 그렸던 것이다. 「벨자에프」도 1932연에 쓰기를-『「유토피아」는 우리가 생각해왔던 것보다 훨씬 실현이 쉬운것 같다. 고통스런 문제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하면 그 실현을 회피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디스토피아」의 특징의 하나는 모든 개인이 개성을 상실하고 획일화되는 「오토메이션」의 세계가 된다는데있다. 곧 모든 사람이 이름표를 잃어버리고 일련번호로 불리게 된다. 영국첩보원 「제임스·본드」는 007이란 번호를 갖고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기의 신원을 감추기 위한것이지 그의 개성마저 방기한것은 아니다.
관중들이 그에게 열광한것도 그에게 숨막힐 만큼의 박력있는 개성이 있다고 보았기때문이었다.
「디스트피아」의 작가들이 즐겨 비판했던 또 하나의 문제는 「뷰로크러시」이다. 「뷰로크러시」란 사무처리의 능률화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요새 와서는 전체주의화에의 위험한 고빗길을 가리키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10월부터 모두 고유번호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내무부에서는 이번에 새로 주민등록법시행령개정안을 만들었다 한다.
여기 의하면 18세 이상의 시민은 모두 10월10일까지 자진 등록해야 하며, 그 다음엔 자기 사진과 지문이 찍힌 「비닐」로 완전 접착된 등록증을 교부받고, 거기 적힌 일련번호를 죽을 때까지 외고 다녀야한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본인보다도 등록증이, 이름보다도 번호가 더 활개치고 다니게 되는셈이다. 무슨 호출이 있을때에도 호명이 아니라 호번호가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만큼 「유토피아」는 멀어지고, 「디스토피아」의 세계는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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