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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하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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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낙동강7백리 강섶은 길어도 흐름은 잔잔하다.
태백산중허리 황지에서 솟은물이 산을 끼고 들을 건너 쉼없이 흐르고 넘쳐 지향없는 3백리-. 경북안동면풍천면하회고을에서 물굽이를 정동으로 치돌렸다가 다시 4백리로 흐른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선조조의 명재상서유성용이 첫울음을 운 하회마을-70여호의 고윽이 연꽃모양 아담하게 물가운데떳다. 중앙선안동역에서 서쪽으로 60릿길 마을어귀 돌무지에 동한개 던지고 정자나무 그늘에서 가쁜숨을돌리는데 어느새날아왔는지 물찬제비 한 마리, 고개를 갸웃거리며젖은깃을다듬는다.
강변모래밭에 발을 들여놓으면 건너편 옥연정에 낮잠깬사공이 나그네를 먼저 알고 손짓도부름도없는데 배를 띄어 마중온다
『하회에는 처음 오는길입니까. 낙동강이 길다카지만 물이동쪽으로흐르는곳은 여기뿐입니더. 저기부용대에 한번 올라보이소. 간(간)이 서늘할껍니더.』
사공의 자랑이 한창인데 뱃머리는 벌써 깍아지른 절벽 부용대에 닿았다. 광대들을따라 이곳에왔던 청나라 원숭이가 고향의 적벽을 그리며 눈물을 흘렸다는곳. 풀섶에 우는 벌레들이 행여나 놀랄세라 발소리를 죽여가며 벼랑길을 더듬는다. 다래덩굴 엉킨뿌리가 발 끝에 부딪치고 계곡을씻는 물소리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부용대상봉, 서애 약포소제삼정승이 도장을 풀어놓고 놀았다는 삼인석에는 검버섯이 돋아나고 아래쪽겸암정지붕에는 청태만이 두렵다.
발밑은 천인단애, 열두굽이를 돌아온 강물이 입암에 부딪쳐 흰거품을뿜는다. 현깃증을 못이겨 고개를들면 보물섬하회마을이 손에 잡힐 듯 한눈에든다.
마을 한가운데 날아갈 듯 자리잡은 풍상유씨의 대종실인 양진당은 보물306호 서애선생의넋이 잠든 충효당 동쪽에 있는 영막각에는 국보제121호인 하회가면과보애선생의 유물 8백71점이 보존돼있다.
음력정초가되면 하회골에 별신굿이 열린다. 장구, 북, 소구, 피리, 젓대, 꽹과리, 징등에 맞춰 타령, 굿거리, 세마치등이울리면 마을 남자들은 각시, 중(승), 양반, 초란이(하인), 먹탈(선비), 영감, 부내(첩), 백전, 이매(관가사인), 할미, 주지(사자), 소등의 탈을쓰고 가면극을 벌인다.
탈선한중을 풍자하고 허세에들뜬 양반계급을 신랄하게 조소한다.
5백여년전 이 마을에 살던 안도령이란 총각이 사람이 없는 곳에서 3개월이나 들어앉아 가면을 새겼는데 마지막 「이매」탈을 조각할 때 어떤 부정한 여인이 문틈으로 들여다 보았기 때문에 총각은 피를 토하고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는 하회탈에 얽힌 슬픈 전설의 한토막.
강변의 밤은 물소리에 깊어간다. 소동파의 적벽 놀이가 별것일까, 계반암에 쉬는 배를 사공을졸라 옥연에 띄웠다.
사공과 마주앉아 소주 한병을 권커니 받거니 비우는 사이에 바람에 밀린 배는 능파대앞을 돌고 추월담을거쳐 달대앞에 닻을 내리니 달은 화산위를 저만큼 용솟았고 만송솔밭에서 잠자던 두루미 한 마리 날개를 치며 맞은편 숲속으로 날아간다.
글 김창태 사진 송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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