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이나 야근·회식 꿈도 못 꾸는데 이렇게 해 회사 인정받을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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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직장맘은 엄마인 동시에 직장인이다. 아이 걱정뿐 아니라 직장인으로서 자신의 앞날을 걱정한다. 그렇지만 아이한테 먼저 매달릴 수밖에 없다. 직장맘만의 스트레스다.

 서울 강남구의 홍보회사에 근무하는 직장맘 정모(33)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후 8시까지 서울 노원구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19개월 된 딸은 친정어머니가 오후 6시에 어린이집에서 데려온다. 택시 운전을 하는 어머니가 늦어도 오후 8시에는 일을 나가야 한다.

출장은커녕 야근이나 회식은 꿈도 못 꾼다. 정씨는 “이렇게 회사생활 해서야 인정받는 직장인이 될 수 있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촌각을 다퉈 가며 아이한테 오는 시간에 동기나 후배들은 업무를 익히거나 인맥을 넓히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대부분 가정에서 아이에 대한 1차 양육 책임을 엄마가 지다 보니 불가피하게 업무 차질이 빚어지기도 한다. 대학강사인 직장맘 한모(34·경기도 의정부시)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올 사람이 없어 예고 없이 휴강을 한 적이 있다. 평소 아이를 데려오는 시어머니한테 갑자기 일이 생긴 날이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는데, 직장맘들은 좌불안석이 된다. 공무원 서모(33·서울 양천구)씨는 지난 1월 아이의 어린이집에서 갑자기 휴원 통보를 받고 휴가를 내려다 상사한테 싫은 소리를 들었다. 어린이집 보일러 동파 사고가 휴원 사유였다. 서씨는 “시댁과 친정이 모두 지방에 있는 데다 주변에 맡길 사람이 없어 휴가를 냈더니 ‘말이 되느냐. 거짓말 아니냐’며 의심하더라”며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고 겨우 휴가를 받긴 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시때때로 회사 눈치를 봐야 하는 직장맘들은 자칫 ‘마미 트랩(mommy trap·엄마의 덫)’에 빠지기 쉽다. 엄마 역할에 충실하려다 직장에서 밀려나는 현상을 말한다. 20대 여성이 열심히 일하다 30대로 넘어가면서 경제활동 참가율이 뚝 떨어지는 까닭이다.

 단절된 경력을 잇는 것도 직장에서 살아남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직장맘 이모(36·경기도 광명시)씨는 “세 살 딸과 6개월 아들을 보낼 적합한 어린이집을 찾기가 너무 어려워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 번 그만두면 다시 직장에 들어가기 힘들 거라 생각해 참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이지영·고성표·장주영·이승호·강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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