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sia 포커스] '군제초이네이’엔 사흘 내내 독경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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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5일 러시아의 제2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독경 소리가 울렸다. 세계 최북단 절인 ‘군제초이네이’에서다(사진). 그리고 3일 기도가 시작됐다. 이날은 러시아 불교 신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석가모니 탄신일이어서 이를 기념하는 기도다. 한국에선 5월 17일이지만 여기선 25일이다.

많은 신자들이 석탄일을 스스로를 정화(淨化)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이날 비가 내리는 가운데 군제초이네이 절에서는 한 백발 남성이 경건한 모습으로 절을 했다. 절 내 기념품 가게에서는 한 러시아인 가족이 염주를 신기한 듯 만져보기도 했다.

군제초이네이는 티베트 불교를 믿는 부랴티야 공화국이나 칼미키야 공화국의 사원과는 분위기가 또 다르다. 형태와 내부는 오히려 여타 불교권 지역의 사원과 비슷하다. 17명의 스님이 상주하는 절은 정갈하게 꾸며져 있고 또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우리 절은 러시아 연방 차원의 기념비적 건축물입니다. 티베트 양식에 상트페테르부르크 모던 양식이 가미된 유일한 건축물이기 때문입니다.” 알라 남사라예바 사원 홍보실장의 말이다.

러시아에서 불교는 두 번째 공인 종교다. 1741년 엘리자베타 여제의 명령에 따라 그때부터 다양한 사찰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러시아 불교 교단의 큰 축일은 8개다. 현대 러시아에서 불교는 전통적으로 ‘대승불교’를 뜻한다. 축일을 맞으면 경축법회가 열린다. 이런 행사들은 보통 3일간 이어지는데, 이 기간에는 사원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승려들은 축일용 의상을 입는다.

석탄일은 러시아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종교인 불교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불교 신자들은 시 정부에 사찰 주변의 거리를 꾸며 달라고 하지 않는다. 신자 수도 아직 그리 많지 않은 데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까지 불편을 끼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불교 신자 수가 정말 적은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물론 러시아 내 불교 신자가 정교회 신자만큼 많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수가 매년 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남사라예바 홍보실장은 "불교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숫자로 보건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불교 신자 수는 대략 5000~6000명 정도”라고 말한다. 현재 러시아 불교 신자 수는 200만 명에 이른다. 더욱이 최근 들어 많은 러시아인이 불교로 전향하고 있다. 자연 행사 참가자도 매년 늘고 있다.

동양의 전통 종교인 불교가 러시아에서 최근 활발히 퍼지고 있는 것에 대해 사원 관계자들은 "불교가 배타적인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다른 종교를 동시에 믿어선 안 된다고 하지 않는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도 불교 의식에 참석하거나 설법을 듣고 싶다고 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그래서 러시아 불교 신자들은 경전을 읽고 설법을 듣는, 말하자면 머리로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

알렉산드라 가르마자포바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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