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사건 무슨 법 어겼나] 법조계 "최대규모 실명제 위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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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송금 사건'이 실정법을 어긴 불법 거래였음이 6일 정부 당국자에 의해 공식 확인됐다. 정세현(丁世鉉)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서 "사건이 남북교류협력법 밖에서 이뤄졌다"면서 "그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한 것이다.

丁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그동안 청와대가 중심이 돼 제기해온 '초법(超法)'의 논란은 더욱 불이 붙게 됐다.

청와대와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측은 사건을 "사법 심사의 대상이기보다는 국회에서 판단할 일"이라고 주장해왔고, 검찰 역시 '법률적 판단의 부적합성'을 이유로 수사 유보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법조계는 이번 사건을 두고 "국가기관이 금융권의 협조 아래 주도한 사상 최대 규모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사건이냐 아니냐는 시비를 낳게 될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초법'의 정의가 어떻게 결론나느냐에 따라 국가보안법의 단속 주체인 국정원이 스스로 범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최대 규모의 금융실명제법 위반"=현대상선은 2000년 6월 산업은행에서 4천억원을 대출받아 이 중 2천2백35억원을 북한에 보냈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이 발행한 수표 26장을 가공인물 6명의 이름으로 배서한 뒤 외환은행 계좌에 입금했음이 확인됐다.

따라서 예금자의 신원확인을 하지 않고 입금을 허락한 외환은행은 일단 금융실명제법 위반에 해당한다. 금융실명제법 제3조에는 '금융기관은 거래자의 실명에 의해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허명(虛名)거래 당사자는 처벌 대상이 되지는 않으나 조세당국의 세무조사 표적이 되는 게 보통이다.

김시현(金時賢)변호사는 "금융기관의 경우 수표에 배서한 사람과 입금자가 동일한지를 확인하도록 돼 있다"면서 "최소한 배서자가 실존하는 인물인지 정도는 확인하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한편 26장의 수표를 외환은행에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국정원이 은행 측에 압력을 행사, 비실명 입금을 강요했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이 만약 사실이라면 국정원과 정치권 관계자는 형법상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있다.

이밖에 해외계좌에 송금하는 과정에서 은행에 제출한 계약서 등 서류를 위조했을 경우에는 외국환거래법(제31조) 위반에 해당된다. 국정원이 현대의 이름을 빌려 해외 사업목적으로 신고한 뒤 이를 북한에 보냈다면 이 법을 어긴 것이 된다.

◇남북교류협력법.국가보안법 문제=대북 경협사업은 통일부의 승인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남북교류협력법 제27조에는 '남북협력 사업은 관계당국의 사업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은 최근까지도 "현대가 개성공단 조성 등 7대 사업을 북측에서 30년간 보장받는 계약을 했다"면서 현대의 대북사업 자금임을 강조해왔다.

朴실장의 주장대로 경협자금이라고 해도 2천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가며 하는 대규모 사업을 관계당국에 알리지 않은 것은 명백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에 해당한다.

또 국정원이 외환은행을 통해 송금한 2천여억원이 마카오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비자금 관리인 계좌에 입금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국가보안법의 적용도 가능해졌다.

경협자금 명목이었다면 모르나 김정일의 자금관리인 계좌로 입금된 게 사실이라면 국가보안법상 '편의제공'에 해당한다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전진배 기자 <allon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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