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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섰던 법정 방청 온 소년범 또래 재판 본 뒤 "엄마 죄송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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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23일 오전 서울 남부지법 404호 법정. 중년 여성의 흐느낌이 법정 안에 울려 퍼졌다. 야윈 어깨를 들썩이며 아들을 선처해 달라는 말을 겨우 토해냈다. “다 교육을 잘못한 제 책임입니다. 제가 더 잘 보호하면 안 될까요.”

 연두색 수의를 입고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아들 한모(16)군은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이윽고 한군이 입을 열었다. “판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는 또래 친구들과 핸드폰을 상습적으로 훔치고 판 혐의로 지난 1월 구속 기소됐다. 이날은 선고를 앞두고 마지막 결심 재판이 진행됐다.

 법정 한쪽에서 학생들이 이들 모자(母子)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한군처럼 재판을 받고 올해 보호관찰을 받기 시작한 소년범 이모(15)군과 김모(16)군이다. 서울 남부보호관찰소가 남부지법과 함께 보호처분과 수강명령을 받은 소년범들을 교화 차원에서 참관케 한 올해 첫 사례다. 소년범이 다른 소년범 재판을 보도록 함으로써 잘못을 뉘우치게 하자는 취지다. 재판 시작 30여 분 후 법정에 선 한군 등 소년범 6명의 최후 발언을 듣던 엄마들의 울음이 여기저기 옮아갔다. 이를 지켜보던 이군과 김군은 떨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 중 김군에게 404호 법정은 낯설지 않다. 그는 5개월 전 같은 법정에 친구 원모(16)군 사건의 증인으로 섰었다. 김군은 지난해 10월 원군과 같이 피해자 A군(15)을 야산에 파묻고 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원군은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초범인 김군은 서울 가정법원에 불구속 송치돼 지난 3월 2년간 보호관찰 처분 결정을 받았다. 범행은 원군의 여자친구를 성추행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당시 서울 개화산에 있는 무덤으로 A군을 끌고 가 원군이 주로 때리고 김군은 훔쳐온 삽으로 땅을 팠다. 이어 A군을 머리만 빼고 묻었다. 이날 공판을 본 김군은 눈시울을 붉혔다. 밥 한 끼 못 먹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엄마가 법정에서 지칠 때까지 울었어요. 좋은 학교 보내려고 학군 좋은 목동으로 일부러 이사까지 했는데 죄송해요.”

 이날 재판을 진행한 서형주 판사는 “인격 형성 과도기에 있는 소년범에겐 단순 처벌이 한계가 있어 스스로 반성하고 범죄 위험성을 인지토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오늘 같은 참관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년사건 전담 재판장을 지낸 주채광 판사는 “소년범은 사회 부적응과 가정 해체 등으로 인해 성인이 돼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또래들과의 범죄에 다시 노출되지 않도록 가정, 학교, 사회가 함께 ‘위기 소년’을 관리하고 보호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연수원의 2012 범죄백서에 따르면 10세 이상 19세 미만 소년범은 2011년 총 8만3068명이었다. 전체 범죄자의 4.4%다. 소년범의 재범률은 40.5%로 전년(38.1%)보다 더 늘었다.

글=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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