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보도와 한국민의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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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의 유력한 일간지 가운데서도 특히 「워싱턴·포스트」지는 한국에 관한 「센세이셔널」한 기사를 자주 보도하는 신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의 예를 보더라도, 지난 4월28일자의 동지는 「리처드·홀로란」 기자의 서울발 기사에서 이태원 위안부 살해 및 방화사건에 관한 주목할만한 기사를 실었다.
즉 동피고인 「H·K·스몰우드」 상병이 한·미 행정협정은 미국 상원의 인준을 받지않은 위헌적인 것이므로 한국법정에서 재판받을 수 없다는 호소문을 「워싱턴」 지법에 제출했다는 보도와 더불어 『①한국법률은 공정한 재판진행을 할만큼 충분히 발달돼 있지않고 ②한국법원은 정치적 압력을 받고 있으며 ③판사들은 월급이 적어 뇌물에 민감할 뿐아니라 ④변호사들은 판사와 타협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자못 한국 법조계를 모욕하는 기사를 실었다고 한다.
또 이 신문은 5월20일자 지면에서 주한미군 당국자들 가운데는 북괴가 금년에 대규모 공격을 가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함으로써 일부 독자를 놀라게 한 바 있었다.
즉 미군당국자들은 북괴의 남침이 비무장지대를 넘어왔다가 곧 퇴각하거나 혹은 「이스라엘」식으로 서울까지 전격적으로 내려왔다가 새로운 지보를 차지하고 그대로 휴전을 하거나 혹은 부산까지 줄곧 밀고 내려오는 방식으로 단행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와같은 두 개의 보도를 접할 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의 의심은 물론, 특히 전자의 보도에 대해서는 한국 법조계에 대한 근거없는 모욕적인 기사로 볼 수밖에 없어 불쾌감마저 감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엄연한 보도자유의 관점에서 외국신문이 어떤 기사를 실었건 그 기사자체를 가지고 필요이상의 왈가왈부를 하고 싶지는 않으며, 또 그 보도의 「소스」가 어디인가 하는 것도 구태여 규명하고 싶지않다. 다만 우리의 언론으로써 그 시비곡직이 밝혀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보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조야 신문독자 가운데에는 외국의 신문보도가 마치 우리 국내신문의 보도보다는 항상 권위있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혹은 그러한 기사·논평을 필요이상으로 예민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대주의적인 신문관이 ?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회에 이와같은 경향의 심층에 깔려있는 동인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기회를 갖고자 한다.
외국신문이라고 해서 반드시 권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그대로의 보도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외국신문이 실은 한국자체에 관한 기사마저 외국신문을 한층 더 높게 평가하려는 경향이 나오게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우리로서는 마땅히 자괴할 일이다. 외국의 권위있는 신문의 경우 그들은 사태의 내용을 대담할이만큼 파헤칠 수 있는 보도·논평의 자유가 존재해 있다는 여건과 또 고관대작을 막론한 보도원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외신을 볼 때 어떤 보도는 기밀저촉이나 집권자의 비위에 거슬릴 듯도 한데 거리낌없이 보도되고 있다. 우리 주변의 언론풍토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도 간주할 수 있으며, 그러한 차이가 바로 외신보도 우위의 사고의 배경이 아닌가 한다.
전기한 「워성턴·포스트」지의 보도만 하더라도 그 사실여부는 엄격히 가려져야 하겠지만 그것을 날카롭게 주시하는 한편에 있어서는 우리 보도·논평자체의 권위향상을 위한 여건의 조성이란 것도 결코 소홀히 생각할 수 없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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