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정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현대는 교육의 시대이다. 우리주변의 모든 어버이들은 교육지상주의자들이다. 자나 깨나 아이들의 교육타령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학문이 성큼성큼 진보하고 있는것은 아니다. 어버이들은 그런데도 왜그처럼 교육 교육…하는것일까. 학문은 둘째문제이다. 어버이들의 교육관은 아이들이 장차 자라서 갖게될 직업과 직결된다. 출세가 문제인 것이다.
모든 어머니들은 무엇때문에 교문에서 서성거리며, 교실에서 치맛바람을 일으키겠는가. 결국은 출세때문이다. 교육 교육…이 아니라, 출세 출세‥인 것이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짓밟히는 것이 어린이들이다. 우리주변의 소년 소녀들치고 그 무차별 시달림을 받지않는 아이들은 없다. 이른바 유식부모들일수록 예외없이 소년 소녀들의 폭군이다.
아이들의 문제는 부모에게 여간 중대한 문제가 아닌것은 사실이다. 부모의 은혜는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다는 것은 과장이나 허황한 상찬만은 아니다. 봉건시대에는 그래서 부모의 존재가 모든 도덕의 중심이었다. 부모는 곧 살아계신 도덕이었다. 그처럼 중대한 부모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부모없이도 자란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의 줄기찬 생명력을 찬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발랄하고 생기에 넘치는 아이들의 생명력도 교육을 받은 부모의 출세공세앞에선 시들시들해지고 만다. 생명력이 언제 꽃필 겨를이 없는 것이다. 밥을 한숟가락 입에 넣는 일에서 부터 잠을 자는 시간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생명력을 발휘할 겨를이 없다.
아이들은 그런 극성스러움에 의해 달라지는것은 틀림없다. 성적이 올라가지, 적어도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어린아이는 4살이면 벌써 최고의 모방력을 발휘할수 있다고 말한다. 원숭이같다는 말도 있지않은가. 바로 부모들의 극성스러움이란 알고 보면 원숭이같은 훈련에 불과하다. 원숭이같은 아이들을 「교육지상」부모들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주변에 있는 훌륭한 어머니들의 정체가 바로 그런것이라면 교육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원숭이 인간의 부모는 과연 훌륭하고 존경할만한가. 이른바 사회가 상을주는 훌륭하고 장한 어머니는 이따금 회의감을 자아내게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